핏줄로 엮인 질긴 인연 '호적 메이트'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2022. 1. 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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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사진출처='호적메이트' 방송 화면 캡처

"앞으로 친하게 지내!"

언니와 그토록 친해지고 싶었던 동생 홍주현이 언니 홍지윤에게 말한다. 사실 언니를 누구보다 좋아하는데, 그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언니 홍지윤은 또 그대로, 동생이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두 명의 건장한 남자, 육준서와 육준희 형제는 바다를 찾았다가 뜬금없이 내기를 하고 차디찬 바닷물로 뛰어든다. 도대체 왜?

수많은 간접 경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은 있다. 친하게 지내자는 말은 친구 사이에서나 하는 게 아니었나. 형제 사이에 누가 더 헤엄을 잘 치는지는 또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언니, 오빠, 동생… 애석하게도 그중 한 명도 없는 나는 형제자매 영역에 대해선 영 빵점이다. 공감의 영역으로 절대 편입될 수 없는 형제자매. 외동인 나에게는 우주만큼이나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동기간'이라는 말이 있다. '형제자매 사이'라는 뜻의 명사다. 그 '사이'에 어떤 무수한 감정과 교감,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타 등등이 존재하는지 전혀 알 길 없는 내게 MBC '호적메이트'는 동기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본격 남의 집 형제자매 탐구 프로젝트'라니 적어도 나 같은 외동딸, 외아들들에겐 예능을 넘어 학습 프로그램이 아닐까.

사진출처='호적메이트' 방송화면 캡처

지금과 달리 외동딸, 외아들이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외동딸이라고 하면 주변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수렴됐다. '곱게 자랐겠네', '외롭겠다'…. 그리고 입 밖에 내지 않는 괄호 안의 속마음은 '혼자밖에 모르겠네', '버릇없을 거야'였을 것이다. 오랜 친구들이 "너는 혼자인 것 치곤 성격이 참 좋아"라고 지금까지도 칭찬(?)하는 걸 보면(얘들아 이젠 그만해라). 그런데 사실이다. 곱게 자랐고, 혼자밖에 모른다. 버릇이 없을 수 있었지만, 그 부분은 내 할머니가 하도 중점적으로 교육해 다행히 예절은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큰 것 같다. 

혼자 자라면 외로울 것이라고 지레짐작들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외로움은 부재에서 온다. 언니, 오빠나 동생이 있다가 없으면 허전하고 빈자리를 실감하겠지만, 처음부터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외동은 부재의 공허함을 모른다. 형제자매가 없는 대신 온전히 혼자 차지할 수 있는 부모가 있고, 어차피 외로움이란 가족, 지인의 수와 상관없지 않던가. 어쩌면 이런 생각은 모든 걸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외동의 소심한 자기방어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한때 멋진 친오빠를 갖고 싶다는 불가능한 로망을 품기도 했지만 사실 형제자매가 있는 친구를 크게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나는 그저 궁금했고, 사실 아직도 궁금하다. 부모를 공유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동기간이란 친구처럼 가까운 것인가. 친가, 외가 양쪽으로 사촌조차 없는 나는 "경험은 창조할 수 없고 반드시 겪어야 한다"는 카뮈의 말처럼 경험한 바 없으니 아무리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도 근접할 수 없다. 그저 무한히 주변 사례들을 통해 동기화할 뿐이다. 

사진출처='호적메이트' 방송화면 캡처

티격태격하던 홍지윤, 홍주현 자매는 술자리에서 속내를 털어놓고, 동생을 이기겠다고 승부욕을 뽐내던 형 육준서는 동생 부부를 위해 조카 돌보기를 자처한다. 대장처럼 동생에게 늘 명령만 하던 언니 김정은은 동생 김정민을 위해 소개팅을 시켜주기도 한다. 이렇듯 '호적메이트'는 성격과 취향도 다른 형제자매들이 보여주는 시트콤 같은 일상도 흥미롭지만, 참견꾼으로 출연하는 이경규, 김정은, 딘딘, 솔라의 코멘트를 듣는 것도 재미있다. 장녀, 막내 등 저마다의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 

'호적메이트'를 보면 형제자매란 친구와 선후배, 연인, 라이벌, 그 모든 것이 혼재된 관계인 듯싶다. 게다가 이를 다시 형제와 자매, 남매로 가르면 그 속에서 언니와 형, 오빠, 누나와 동생 등 얼마나 많은 복잡미묘한 상황과 입장 차,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겠는가. 어쨌거나 '혼자'와 달리 모든 것을 함께하거나 나눠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은 그들을 단단히 결속시킬 테고 한편으로 동반되는 필연적 경쟁 덕에 한층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험난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지켜줄 가족이란 울타리, 핏줄로 얽힌 든든한 내 편의 수가 많지 않나. 남보다 못한 형제자매도 있다곤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조차 쌓이는 경험치가 있을 테니 외동들은 결코 당해낼 수 없는 경쟁력일 터. 그러고 보니 지금껏 크게 부럽지 않았던 '가진 자'들이 부럽기도 하다.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모르는 부분도 많고, 닮았지만 또 다른 구석이 많은. 그래서 알고 보면 오히려 남보다 더 많은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것이 형제자매란 것을 새삼 '호적메이트'를 통해 배운다. 사실 나는 '호적메이트'보다 더 형제자매에 대해 생생한 관찰이 가능한 환경을 갖고 있다.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장녀, 차녀, 막내, 누나, 언니, 동생 그 어떤 처지도 실감하지 못해 많이 미안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이 커가며 끈끈한 '호적메이트'가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얘들아, 부디 친하게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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