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안목에 젊은 감각 더해.. 대한민국 '미술 영토' 넓힌다

장재선 기자 2022. 1. 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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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현대 전경. 1995년 인사동에서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홈페이지 캡처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K1(1관) 전경.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2020년 재개관했다. 안천호 작가 촬영

■ Leadership 클래스 - 화랑가 2세 경영자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 - 신·구 작가 아우르는 전시

김찰스창한 국제갤러리 대표 - 부인 송보영 부사장과 협업

우정우 학고재 실장 - 젊은 작가들과 트렌드 공유

박종혁 갤러리BHAK 대표 - NFT 등 첨단 아트에 관심

국내 주요 화랑을 꾸려가는 2세 경영자들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창업 1세대에 이어 화랑 운영을 맡아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30~50대인 이들 2세 경영자들은 국내 미술시장으로 진입한 외국계 화랑들과 경쟁하는 한편 해외시장에 우리 작가들을 소개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 활황 분위기를 주도하며 기존 블루칩 작가와 수집가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미술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신진 작가, MZ세대 컬렉터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다. 갤러리가 그림을 감상하고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휴식과 힐링을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며 라이프스타일의 안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모토다.

◇대를 잇는 장점 부각 = 국내외를 막론하고 화랑업은 대를 잇는 가족경영이 많다. 작가·수집가와의 신뢰 관계를 장기로 이어가며 컬렉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비즈니스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창업 1세대는 그 노하우를 후대가 발전적으로 이어가길 바라며 경영자 수업을 시킨다. 2세대 인물들은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트비즈니스의 매력에 빠져서 가업을 계승했다. 사업 성취감 못지않게 국내외의 빼어난 예술가, 안목 높은 수집가들과 교우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서다.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고 윤택하게 해 주는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보람도 크다.

작가와 수집가들은 대를 잇는 화랑들의 전통과 역사를 인정하고 그 선구안을 존중한다.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등 국내 대표 화랑들이 위상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외국 유명 화랑들이 국내에 앞다퉈 들어오고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2세대 경영자들의 장점이 특별히 부각된다. 해외 유학 후 체계적 경영 수업을 거치며 시야를 키웠기 때문에 급변하는 국내외 시장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에 대한 리더십 전문가들의 총평이다.

2세대 경영자들은 대부분 공격적 전략으로 자신들의 미술 영토를 넓혀가고 있으나, 일부는 1세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가나아트센터가 대표적이다. 화랑계 한 원로는 “가나아트 창업자와 가까워서 자주 대화를 나누는데, 경영 그립을 여전히 강하게 쥐고 있더라”며 “화랑 대표를 맡은 2세가 아직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한 미술경영 전문가는 “2세대는 창업자의 영향권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시대 변화에 맞게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며 “소극적으로 운영하면 지금까지의 성공을 지키지 못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시각을 밝혔다.

◇글로벌 영토 확장 = 국내 주요 화랑 중 2세 경영자로 가장 먼저 경영권을 위임받은 사람이 도형태(52) 갤러리현대 대표다. 미국 프랫대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돌아와 화랑 업무를 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모태인 현대화랑에서 법적으로 분리한 갤러리현대 대표가 된 것은 지난 2016년이지만 이전부터 경영에 참여해왔다. 창업자인 박명자 회장은 원로 작가들과 계속 교류하며 후선 지원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의 차남인 그는 선대가 이뤄놓은 권위와 명성을 지키며 한국근현대미술의 성취를 해외에 알리는 것을 경영 비전으로 삼고 있다. 프리즈 런던 등 세계 유명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내 작가들을 선보여왔다.

도 대표는 신·구 세대 작가를 아우르며 대중 눈높이의 전시를 펼치는 한편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실험미술 작가들의 독창성을 알리는 데 특히 힘써왔다. 이승택, 박현기, 이건용 등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재조명됐다.

그는 서울 강남 분관에 VIP 전용룸을 마련해 수집가들의 고급 취향을 겨냥하고, 쇼룸 밖 전시공간에서는 일반 관객이 관람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도 대표는 첨단 매체를 활용하는 미디어아트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다. 최근 3D 아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미국 회사 ‘3D Live’와 아시아총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외부 활동에도 활발히 나서 현재 한국화랑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에 따르면, 그는 다른 화랑 회원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화랑협회장을 지낸 모친에 이어 향후 회장에 출마하기로 약속했다는 게 협회 관계자 전언이다.

◇다양한 문화 공간 모토 = 국제갤러리는 창업자인 이현숙 회장이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아들 부부인 김찰스창한(44) 대표와 송보영(40) 부사장의 협업 경영 체제로 꾸려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송 부사장이 전시 기획, 작가 관리, 아트페어 참가 등을 책임지고 있으며 김 대표는 총괄 경영을 맡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창업자인 이 회장 시절부터 세계 시장과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회장의 딸인 티나 킴(51)은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운영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김 대표도 한국 이름에 ‘찰스’라는 영어명을 넣은 데서 알 수 있듯 글로벌 감각을 지향한다.

그는 모친과 교우해 온 거장들과 블루칩 작가들을 잘 관리하며 동시에 젊은 작가들을 부지런히 영입해서 전시 내용을 알차게 꾸미고자 한다. 이를 위해 송 부사장과 함께 양혜규, 문성식, 강서경 등 유망 작가들과 소통해왔다. 태국 등의 유망 작가, 사진 작업을 하는 박찬욱 작가 등을 영입해 대중 친화적이며 젊은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

무엇보다 갤러리 공간이 미술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 부부의 생각이다. 서울 삼청동 본관을 리모델링하며 ‘힙한’ 느낌을 살리고자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술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와서 쉴 수 있는 핫플레이스를 지향했다. 갤러리 내 카페, 레스토랑을 거기에 맞게 개조하고, 전시장 사이에 관객이 앉아 휴식할 수 있는 계단을 만들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 = 학고재 우정우(35) 실장, 박영덕화랑의 후신인 갤러리 BHAK의 박종혁(29) 대표는 나이에 비해 미술계 경험이 있는 편이다. 우 실장은 아버지 우찬규 대표로부터 20세 때부터 일을 배웠고, 학고재 직원으로 일한 지도 7년째다. 전시 운영, 세일즈, 공공조형물과 NFT(대체불가능토큰) 사업 등의 실무를 이끌고 있다. 전시 기획, 고객 응대는 우 대표와 논의해 진행하고 있는데, 30~40대 작가들은 직접 관리한다. 우 실장은 2세 경영자로서 오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듯 겸허한 말투가 몸에 배어 있다. 그는 “선대가 이룬 것을 물려받아서 하는 것이니 장점이 많지만, 기성 작가들이 선대와 비교하며 저에게 조언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젊은 만큼 많이 움직이며 작가와 수집가를 만나서 새로운 트렌드를 배우려 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2015년부터 3년간 한국화랑협회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해외 파트 쪽 일을 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재작년에 화랑 대표가 된 그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독특한 전시를 많이 했던 박영덕화랑의 정신을 이으며 비디오아트와 NFT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아트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실험적 일을 찾아서 하는 갤러리스트가 되고 싶다”며 “해외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서 글로벌 감각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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