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단일화 넘어 ‘연합의 정치’ 어떤가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2. 1. 17.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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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 연합… 한배 탄 김종필·김대중·박태준 - 1997년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앞줄 가운데) 전 대통령이 김종필(왼쪽) 전 국무총리, 박태준(오른쪽) 전 자민련 총재와 함께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세 사람은 ‘DJP 연합’을 성사시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란 스튜디오 제공

딱히 눈에 띄는 굵직한 이슈가 안 보이는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선거의 핵심은 결국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후보 간 지지율이 크게 요동치지 않는 것도 많은 사람이 어느 한 쪽으로 이미 마음을 정한 탓인 것 같다.

얼마 전 국민의힘의 내홍과 가족 문제로 윤석열 후보 지지율이 하락했을 때, 그것이 이재명 후보 지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제3 후보’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지지 하락의 수혜자가 되었다. 주요 두 후보 간 지지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유권자들이 후보의 개인적 매력이나 공약이 아닌 다른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은 윤석열이나 국민의힘이 마뜩잖아 보여도 이재명 지지로 옮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재명의 지지는 민주당 지지층에 묶여 있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재명 후보가 ‘탄압받았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을 것이다. 논란이 있더라도 이재명 후보를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해야만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차별화를 하려면 왜 많은 사람이 정권 교체를 원할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상징되는 정책 실패, 그리고 탈원전이나 소득 주도 성장 등 현실을 무시한 이념 지향적 정책 추진이다. 이런 무능함이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 건 맞지만, 지난 5년 동안 쌓여온 불만이 오롯이 여기서만 비롯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문재인 5년 동안 국민을 정말 힘들게 한 건 정치였다. 자기편끼리 똘똘 뭉친 편 가르기의 정치, 독선과 독점의 정치, 그리고 이로 인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이 지난 5년의 정치였다. 국정은 배타적으로 구성된 소수의 청와대 인사들이 주도하였고, 여당은 수적 우위에 기반한 밀어붙이기식 정치를 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사라졌고 행정부는 자율성을 잃어버렸고 국민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정책의 무능보다 국민을 힘들고 아프게 만든 건 바로 문재인 정부의 정치였다. 그래서 ‘탈문재인’을 하려면 부동산만으로는 안 되고, 무엇보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제기된 ‘연합의 정치’는 주목할 만하다. 이 아이디어가 부상한 것은 윤석열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후보 단일화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단일화 논의는 눈앞의 선거 승리를 위한 셈법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단일화가 선거 전술의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 파괴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단일화로 권력 교체를 이뤄도 과연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누가 승리하든, 선거가 끝나면 캠프를 중심으로 자기들끼리 자리를 나눠 갖고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국정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있다. 권력 교체라지만 박근혜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였다. 단일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그저 선거 전술이 아니라,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공유와 타협’의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몇 차례 단일화가 이뤄졌지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1997년 대선의 DJP 연합이다. 이는 김대중·김종필 두 노련한 정치인의 전략적 합의였고 이들의 연합은 김대중 당선에 기여했다. 그런데 DJP 연합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공동 정부 구성과 내각제 개헌에 대한 합의다. 전자는 성사되었고 후자는 무산되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DJP 단일화는 선거 승리를 위한 결합 이상으로 정치 변화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권력을 독점해 온 대통령만을 겪어온 상황에서 김대중과 김종필이 권력 공유에 합의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신선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몽준이나 안철수의 단일화는 의미 있는 정치적 성과나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이러한 연합의 정치는 보수·진보 어느 쪽에서나 주도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보수 정치 세력에게 연합의 정치는 그동안 기득권에 집착해서 정치 개혁에 소홀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래서 공동 정부 구성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망가뜨린 선거 제도 개혁 등 정치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겠다는 약속도 필요하다. 정권 교체 열망이 높다고 해도 명분 없는 단일화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다만 새로운 정치를 위한 연합의 정치라면 그건 고려해 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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