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마스크 사기꾼’ 효과

김태훈 논설위원 2022. 1. 17.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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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팀이 타인의 얼굴을 보고 매력을 느끼거나, 나쁜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첫인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윤리적이지 못할 순 있어도 과학적 타당성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살던 인류의 조상은 눈앞에 나타난 짐승이 맹수인지 사냥감인지 한눈에 간파해야 했다. 잘못 판단하면 목숨을 잃었다. 뇌과학에선 이처럼 불충분한 정보를 ‘얇은 조각(thin slicing)’이라 한다. 사람끼리 갖는 첫인상도 그런 얇은 조각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첫인상을 결정할 때 눈을 가장 먼저 본다. 니캅(베일)으로 눈 아래 얼굴을 가리는 아랍 여성들은 눈 화장에 온 정성을 쏟는다. 마스크가 일상이 된 코로나 사태는 이런 눈 화장을 세계적 신드롬으로 만들었다. 한국 홈쇼핑 채널들은 “지금은 눈썹이 정말 중요한 시대”라며 눈 화장 제품을 판다. 눈 화장품 매출이 코로나 이전보다 9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마스크 쓰고 면접장에 가는 청년은 좁은 취업 문을 뚫기 위해 눈 트임 같은 눈매 교정 수술도 받는다.

▶얼굴 일부를 가린 이성을 민얼굴 이성보다 매력적으로 보는 현상을 ‘마기꾼(마스크+사기꾼)’ 효과라고 한다. 영국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여성 43명을 대상으로 남성의 매력을 평가하게 했더니 매력적이지 않은 남성의 점수가 민얼굴 때는 1.8점에 머물렀지만, 마스크를 쓰면 2점을 넘기는 거로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자기에게 편리하게 해석하려는 인간 뇌의 편향성이 발현된 것이다.

▶제한된 정보만 주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심리는 남녀가 적극적으로 짝을 찾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선거에선 불합리한 선택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에서 상·하원 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유권자 호감도를 조사했더니 호·불호를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초에 불과했으며, 주로 외모와 말투 등으로 판단했다. 이는 투표 결과에도 반영됐다.

▶다행히도 ‘얇은 조각’ 효과는 지속적이지 않다. 반복적으로 만나는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마스크 너머 눈빛이 아니라 약속 지키기라고 한다. 특히 첫 번째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행동에도 첫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과 달리 현대 유권자는 후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투표장에 가기 불가능하다. 부족한 인상 정보에 좌우되기보다 어떤 후보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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