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임인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경향신문]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임인년 새해 한파 녹이는 따뜻한 나눔” 등처럼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직 임인년은 시작되지 않았다. 오늘도 여전히 신축년(辛丑年)이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분명 2022년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임인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는 육십갑자의 기준은 음력이기 때문이다. 즉 돌아오는 설날인 2월1일부터가 임인년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음력을 써왔다. 그러던 우리가 양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95년께로,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다.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앞서 양력을 사용했다. 일본도 원래는 음력을 썼지만, 서구열강과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자연스레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서구열강에 굴종하며 힘을 기른 일본은 마치 분풀이를 하듯이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해 온갖 못된 짓을 벌였다.
우리에게도 그랬다. 국권을 빼앗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려 했다. 음력을 못 쓰게 하고 우리의 최고 명절인 설날도 없앴다. 설을 앞두고는 방앗간 영업을 금지하고, 설날에는 도시락을 뒤져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은 벌을 주었다. 그러면서 양력 1월1일을 ‘신정(新正)’으로, 음력 1월1일을 ‘구정(舊正)’으로 여기도록 교육했다. ‘신정’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바람직한 날로, ‘구정’은 하루빨리 없애야 할 ‘구습’으로 교육한 것이다.
대부분 ‘구세대’보다 ‘신세대’로 불리기 바라고 ‘구닥다리 제품’보다 ‘신제품’을 좋아하듯이 ‘신정’은 새롭고 긍정적인 느낌을, ‘구정’은 낡고 부정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1980년대 중반 ‘구정’을 ‘민속의 날’로 이름을 바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옛 이름 ‘설날’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 이렇듯 ‘설날’이 제 이름을 찾았으므로, 이제 더이상 ‘신정’과 ‘구정’의 구분이 필요 없게 됐다.
양력 1월1일은 그냥 새해 첫날이다. ‘음력설’과 ‘양력설’의 구분도 이상하다. 우리의 설은 하나뿐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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