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경향신문]
청춘은 화살처럼 흘러간다. 머리가 희끗해지면 어느새 황혼이다. 그런 회한을 담은 노래가 많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처럼 오래도록 사랑 받는 곡도 드물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지극히 한국적인 이 노래는 엉뚱하게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블루스 뮤지션인 김목경(사진)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음악공부를 위해 런던에 있었다. 머물던 2층 방 창문 너머로 노부부가 사는 집이 보였다. 노부부는 주말 저녁 아들 내외와 손주가 돌아갈 때면 오래도록 뜨락에 나와 배웅을 했다. 김목경은 5년째 뵙지 못한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
1990년 첫 앨범 ‘올드 패션드 맨’을 내면서 이 노래를 수록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블루스 기타곡들과는 결이 달라서 건반 연주로 녹음하여 맨 끝에 밀어 넣었다. 이 노래를 되살린 건 김광석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막내 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을 들으며 목이 메었다고 했다. 그가 ‘다시 부르기 2’에 넣으면서 유명해졌다. 녹음실에서 김목경과 만난 김광석은 술잔부터 건넸다. 이 노래는 “한잔하고 불러야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임영웅이 불러 더 유명해졌지만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서유석은 ‘노부부 이야기’ 대신 ‘부부 이야기’로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 김목경은 “노래를 만들 때는 60대가 아주 먼 이야기였는데 내 이야기가 됐다”면서 껄껄 웃었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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