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부의 不通.. 뜨끔하지 않나요?

박돈규 기자 2022. 1. 17.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배우 남명렬
배우 남명렬은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폭포수처럼 언어가 쏟아지는 연극”이라며 “듣기보다 자기 말만 하기 바쁜 우리 모습과 닮아 있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제가 연기할 아버지 크리스토퍼는 폐쇄적인 지식인이에요.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강요하고 독설도 거침없이 합니다. 이 가정을 지배하는 추장과 같아요.”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18일부터 정동극장)은 제목부터 눈길을 붙잡는 연극이다. 영국 작가 니나 레인은 소속감을 주면서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가장 작은 단위의 부족(部族)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배우 남명렬(63)은 “크리스토퍼의 막내아들 빌리는 청각장애인인데 소수자로 키우기 싫어 장애인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며 “이 연극은 한국처럼 경쟁적인 사회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길을 모색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가족은 늘 시끄럽지만 자기 말만 하기 바쁘다. 언어가 무성하지만 진실한 소통은 없는 셈이다. 구순술(입 모양을 읽는 것)로 소극적 의사소통을 해온 빌리가 청력을 상실 중인 실비아와 사랑에 빠지고 수화를 알게 되면서 상황이 뒤집힌다. 듣기만 하던 그가 침묵을 깨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남명렬은 “빌리가 ‘우리 가족보다 실비아의 가족이 더 진짜 같다’며 집을 떠나겠다고 할 때, 어머니가 ‘널 이해해’라고 말하는 순간 자막에는 ‘널 이해 못 하겠어’라고 뜬다”며 “이렇게 가족의 언어와 속마음 사이의 불일치가 씁쓸한 웃음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배우 남명렬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어느덧 연기 인생 30년. 남명렬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1991년 서른두 살에 배우로 전직했다. 대전에서 시작해 1993년 ‘불의 가면’으로 서울 무대에 데뷔했는데 한동안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빈둥거리다 돈도 떨어지고 참 견디기 힘들었어요. 배우에게는 다음 작업이 없다는 게 가장 큰 형벌입니다. 기다리고 공연하면서 쉬는 기간이 조금씩 짧아졌지요.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듯’ 천천히 얼굴과 이름을 알리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연기하고 있네’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직업적인 연기는 차원이 다르다. 남명렬은 “약을 팔 때도 가면을 쓰지만 내 자의식을 버리진 않는다. 하지만 무대에서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배역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며 “내 몸을 사용하지만 의식은 그 인물이 소유하는 게 연기”라고 정의했다. 어떤 대목이 잘 안 풀릴 땐 “이호재 선생님이라면 얼마나 유려하게 했을까” “친구 박지일이라면 이 격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같은 상상을 하며 힌트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연극 ‘그을린 사랑’ ‘라스트 세션’ ‘코펜하겐’, 드라마 ‘태종 이방원’ 등에서 지식인을 주로 맡아왔다. 지난해 연극 ‘안녕, 여름’에선 늙은 동성애자를 연기해 큰 웃음을 줬다. “코미디 ‘누가 누구?’(2001)를 하면서 경직되지 않고 여유를 갖는 법을 배웠어요. 연습하는 동안 대사와 심리를 충분히 만들어놓고 무대에서는 잊어야 합니다. 지식인 연기요? 비교적 수월하지만 낯선 배역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제 안에 또 뭐가 들어 있는지 저도 궁금해요(웃음).”

박정희가 연출하고 정재은·이재균 등이 출연하는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관객을 향해 묻는다. 진실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느냐고. 그렇다면 불통(不通)은 어떻게 해결할까? 결론을 내리거나 훈계하는 연극은 따분하다. 남명렬은 “이 가족을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내 입장만 생각하며 상대를 바라보는 바람에 소통이 안 되는 것 아닐까’ 하고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저 가족이 어떤 방법으로든 화해하고 융화되겠구나’라는 희망의 씨앗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