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비율 100% 넘어도 된다는 건 혹세무민…재정건전성 무너지면 그 전에 위기 닥쳐”

김정훈 경제부 차장 2022. 1.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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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이 만난 사람] 국가 부채 급증 막아야 한다는 김준경 KDI 전 원장

1974년 처음 집계했을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19%였다. 오르락내리락하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20% 선을 넘기 시작하면서 가파르게 늘어났다. 2011년 30%를 돌파, 2020년 40%까지 뚫었다. 올해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40%를 넘어도 주요국과 비교하면 양호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겨도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도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빚을 내서라도 복지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말이 넘친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전 원장은 “국가 부채가 불어나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 말은 세상을 속이는 혹세무민”이라고 했다. “걱정스러운 일을 걱정하지 않는 세태가 너무 걱정스럽다”고 했다.

김준경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미국은 국가채무비율이 100%를 넘어도 정부가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신뢰가 있는 반면, 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 국가채무비율이 현재 한국보다 낮은 41%였지만 재정 위기가 발생했다”며“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낮아 재정 건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근거도 없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남강호 기자

◇최후의 안전판인 재정 건전성 무너지면 파국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길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가 채무 비율이 100%라면 지금의 영국 수준이다. 외국 투자자들은 재정 건전성과 국가 채무 규모만 본다. 우리나라 채무 비율이 100% 되기 전에 해외 투자자들은 떠난다. 나중에 기축통화국이 된다면 모를까 한국 국채를 국제 금융시장에서 누가 사 주겠나. 미국 등 주요국은 언제라도 국채를 사줄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지만,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는 한국의 국채를 사겠다는 투자자를 찾을 수 있겠나?”

-채무의 절대적인 수준은 낮은 것 아닌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 중에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는 우리와 중국뿐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G2이기도 하고 외환 보유고가 엄청나다.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의 국가 채무 비율이 평균 90% 정도 되는데, 한국이 지금 그것의 절반밖에 안 되니 괜찮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국가 부채 비율 상한선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정부는 미국이 134%, 일본이 254%라는 말을 한다. 독일의 경우 국가 부채 비율이 60% 선이다. 독일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빠르니까 더 보수적으로 더 신중하게 재정 관리를 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은 국가 경제의 최후 안전판이다. 이걸 잊으면 파국이 온다.”

-정부도 재정 건전성이 최후의 보루라고 말하긴 한다.

“외환 위기가 났던 1997년에 채무 비율이 11.4%였다. 그런 상태에서 위기가 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나마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대규모 공적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나라에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IMF도 그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안 했다. 재정이 너무 건전하니까 쓰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소규모 개방 경제다. 외환 위기의 기억을 잊어선 안 된다.”

-국가가 빚을 덜 내니까 거꾸로 가계 부채가 늘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도 황당한 소리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계 부채가 급증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소득 주도 성장과 같은 경제 실정, 저성장, 최저임금 급등, 부동산 정책의 반복된 실패와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이다. 그게 다 가계 부채로 갔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소득이 줄어들고 일부는 실업 상태에 빠지니까 가계 소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계 빚을 낸 거다. 저성장이 1~2년으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니까 더 늦기 전에 무리해서 빚을 내서 집을 사야겠다는 수요가 늘어났다. 정부 정책의 실패 때문에 가계 부채가 늘어난 것이다. 국가가 빚을 덜 내서가 아니다.”

◇정치인 공약 타당성 조사해야

-요즘은 세금 아껴 쓰자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세입 내 세출 원칙이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무너졌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때도 잘 했다. 거의 부채비율이 평평하게 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올라가긴 했는데, 그때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지금처럼 막 써도 된다고 스탠스 잡은 게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정건전성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돼 버렸다.”

-여야 대선 캠페인이 모두 돈 쓰자는 공약이다.

“다음 정부가 이번 정부보다 심할지도 모른다. 정치권이 너무 매표 포퓰리즘에 매몰돼 있다. 국민이 그런 것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국제 신용 평가 회사) 무디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탈모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자는 공약이 나왔을 때, 국민들과 언론이 그 공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볼 것 같다. 정치인들 공약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획재정부를 소심한 ‘곳간지기’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기재부가 중심을 잡고, 재정 건정성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점이 아주 약화됐다. 정치적 지출의 실무자들처럼 변질됐다. 이러다 보니 장기적인 구조적 문제들의 해결에는 손을 놓은 상태다. 차기 대통령은 기재부와 파트너가 돼서 저출산, 공교육, 규제, 재정에 대한 장기 의제에 대한 목표치를 만들고 매달 대통령이 주재해 점검 회의를 해야 한다.”

◇적자 국채로 추경하면 미래 세대 부담

-1월에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필요성 여부를 떠나서 예산 편성, 집행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불과 한 달 전에 607조원 본예산이 확정됐다. 자영업자 피해 보상은 올해 예산을 편성할 때 상당 부분 예상할 수 있었던 사안이다.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피해 보상 재원이 본예산 607조원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었어야 했다. 적자 국채 70조원 찍어 수퍼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자영업자 피해 보상 재원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이건 공무원의 직무유기다. 동시에 대선을 의식한 집권 여당의 선거 공학이다. 습관적인 추경은 큰 문제다.”

-빚을 내서 추경을 하겠다고 하는데.

“지금 청년들이 나중에 다 갚아야 하는 거다. 지금 당장도 문제가 된다. 짧은 시간에 대규모로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과도하게 오른다. 시장 금리가 급등하면 가뜩이나 부채가 많은 사람들은 아우성을 칠 거다. 소비를 줄일 거다. 기업의 투자도 줄 거다. 민간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기 회복에 역행할 수 있다. 국채를 어쩔 수 없이 발행하더라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영업자를 지원하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영업자는 스스로 하나도 잘못한 게 없는데, 정부가 영업하지 말라고 하니까 막대한 손실을 억울하게 보는 거다. 한편으로 보면 일반 국민은 방역 때문에 건강을 유지한다.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는 방역 이득이 있는 상황이다. 자영업자 지원은 당연하다. 사회적 공정에 부합하고, 재정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책무다. 그런데 피해 보상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문제다. 지금까지는 재원을 상당 부분 국채로 했다. 다른 예산을 줄이고, 재정 지출 조정을 해야 한다. 다른 것을 줄이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그건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쓰던 데 그대로 다 쓰고 자영업자 지원을 한다고 하니 국가 채무로 가는 것이다. 결국 청년 세대·미래 세대의 몫이 된다.”

◇증세와 지출 구조 조정 병행해야

-지출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부가가치세 세율을 높이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부가세의 특성상 탈세 가능성이 떨어지고 조세 회피가 어렵다. 재원을 확대하는 데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세제다. 다만 역진적이라는 성격이 있다.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가 확보된 세원을 저소득층, 노인 등 어려운 쪽에 투입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역진적인 성격을 피해갈 수가 있다. OECD 국가의 부가가치세율 평균이 19.3%인데, 한국은 일본과 스위스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증세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항구적인 복지 지출을 적자 국채를 찍어서 감당하는 것은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 세대의 세금으로 해야 한다. 올해 예산 607조원 중에 300조원 정도는 건드릴 수 없는 복지 지출 예산이다. 나머지 300조원 정도가 줄일 가능성이 있는 예산, 재량 지출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공약이 각 부처 예산을 20%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잘라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쉽지 않으면 증세해야 한다. 증세 안 하고 국가 부채로 가면 청년들이 다 죽어나게 된다. 국가 부채가 계속 늘어가면 경제 역동성이 떨어진다. 경제가 침체되고 세금이 더 안 들어오게 된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GDP가 쪼그라들어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또 올라간다. 그래서 국가 채무 비율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해서 일정 비율 이상 넘지 않겠다고 하고 실행해야 한다.”

☞김준경

1956년 서울에서 나서 경기고,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샌디에이고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버지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했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옮겨 작년 말 퇴임했다. 2008년 청와대 금융비서관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고(故) 김정렴씨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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