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31] 암태도와 노만사(露滿寺)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2. 1.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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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종착지는 사막과 설산(雪山)이다. 다른 데 다 둘러본 다음에는 여기로 향하게 되어 있다. 내가 그랬다. 강력한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삶의 내공은 고독을 견디는 힘에 비례한다.

설산과 사막을 대체하는 장소가 바로 섬이다. 답사 전문가들의 마지막 도착지도 섬이다. 조선조까지 서남해안의 섬은 유배지가 많았다. 고립과 고독, 그리고 궁핍을 실컷 맛보라는 형벌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섬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전남 신안군의 암태도. 7.2㎞의 천사대교 위에서 바다에 떠 있는 수십개의 섬을 석양 속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은 압권이다.

여객선으로 그리스 에게해(海) 풍광을 둘러보며 가슴 깊이 간직했던 그 추억이 천사대교를 건너면서 다시 올라왔다. 굳이 산토리니까지 안 가도 되겠다! 바위에서 영발이 나오는데, 암태도(巖泰島)는 바위가 큰 섬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동안 암태도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지명을 떠올릴 때마다 ‘암태도의 기가 좀 세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현장을 와 보니까 암태도의 산들은 높지는 않지만 온통 바위투성이였다. 섬인데도 의외로 논밭도 많았다. 1924년 암태도 소작쟁의는 바위 기운을 받은 암태도 소작인들의 강인한 기운과 넓은 논밭의 생산력이 결합되어 일어난 투쟁이었다. 소작인 600명이 6시간 풍선(風船)을 타고 목포경찰서로 건너가 항의하였다. 600명은 굶어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의미의 ‘아사동맹(餓死同盟)’을 맺었다. 결국 소작료를 이전의 7할 정도에서 4할로 낮추었다. 기질이 물렁하면 아사동맹 못 맺는다. 암태도의 바위 기운이 아사동맹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바위가 많으면 절이 하나 있을 법하다. 암태도의 제일 높은 산이 356m의 승봉산이다. 이 산의 바위도 아주 단단한 화강암이다. 바위가 단단할수록 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도 강하기 마련이다. 산의 7분 능선쯤에 ‘이슬이 가득하다’는 뜻을 지닌 노만사(露滿寺)가 있었다. 이름은 매우 낭만적이었지만 70대 중반의 노승 한 명이 외롭게 절을 지키는 춥고 배고픈 절이었다. 신도 숫자도 15명 남짓이다. “이슬[露]은 어디에 있습니까?” “법당 뒤에 있습니다.” 법당 뒤에는 움푹 들어간 바위 절벽이 있었고, 그 절벽 사이에 푸른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었다. 그 이끼 사이에서 떨어지는 석간수가 바로 이슬이었던 것이다. 절 앞의 바다 풍광은 기가 막힌데, 가난과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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