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미·중관계사] 인문교류와 외교관계의 향배

중국은 외교에서 ‘인문교류’를 중시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시진핑 정권도 이를 계승하려는 의지를 역설하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우리와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한한령(限韓令)을 내리고 중국에서 우리의 드라마와 영화 상영을 금지시켰다. 미국과는 2019년부터 중국에서 NBA 시범경기 개최와 정규시즌 경기의 방송을 중단했다. 미국 NBA 선수들이 중국 인권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중국 최고의 국제정치학자 왕지스(王緝思)는 작년 여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의 문화적 침투행위를 ‘숨겨진 손(hidden hand)’의 농간에 비유하면서 시 정권의 대응을 정당화했다.

미국과 중국의 인문 교류는 역사가 깊다. 19세기 중엽부터 중국은 단체로 유학생을 미국에 파견했다. 미국의 문화가 1930년대에 부흥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가령, 당시 미국 최고의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는 1934년 12월에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 영화 또한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초 미국의 대표적인 배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중국 영화팬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미국 영화제작사 키스톤은 유럽 제작사와의 경쟁에서 쉽게 승리할 정도였다. 1935년 한 해에만 350편 이상의 미국 영화가 중국 극장에 걸렸다. 시장 점유율만 90% 이상을 선회한 수준이었다.

1930년대 중국 상하이의 재즈 클럽. 출처:위키피디아

미국 음악은 영화보다 중국에 더 일찍 선을 보였다. 1920년대 초 미국의 대표적인 재즈음악가 듀크 엘링턴의 첫 앨범이 소개되면서 중국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상하이 클럽에서 재즈음악의 연주는 끊이지 않았다. 1935년 벅 클레이턴이 이끄는 할렘 젠틀맨 밴드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클레이턴은 재즈 전수에도 앞장섰다. 그의 대표적인 수제자가 리진후이(黎錦暉)였다. 훗날 리는 중국 대중음악의 대부가 된다. 이후 중국 공산당이 득세하며 미국 문화 말살정책을 펴면서 미국과의 관계도 사실상 단절되어갔다. 인문 교류가 외교관계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임을 시사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