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협회 "글로벌 OTT가 빼앗아간 목소리 되찾겠다"

이유진 기자 입력 2022. 1. 1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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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에'불공정 계약' 시정 요구

[경향신문]

한국성우협회 이연희 이사장(왼쪽)과 최재호 사무총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한국성우협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초과수익 독식 ‘매절계약’ 관행에
2차 저작물 권리 행사도 원천 차단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 안 올려주고
작품 참여 외부 유출 금지 서약도
“지금 안 나서면 영영 목소리 잃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글로벌 1위 기업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에 진출했다. 그 후 6년, 한국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경쟁을 벌이는 ‘OTT 격전지’가 됐다. 해외 콘텐츠가 물밀듯 쏟아지며 목소리 연기를 전문으로 한 성우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성우협회 이연희 이사장과 최재호 사무국장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협회는 지난해 11월부터 글로벌 OTT를 상대로 권리 되찾기에 나섰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한국성우협회 사무실에서 이 이사장과 최 사무국장을 만나 성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성우들 수입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22일 한국성우협회는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우들이 OTT를 상대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성우들은 해외 글로벌 OTT의 매절계약 관행을 지적한다. 매절계약은 콘텐츠 흥행으로 초과수익이 발생해도 수익을 배분하지 않도록 한 계약 형태이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대박’을 친 뒤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매절계약은 성우들의 인격권과 재산권까지 침해한 권리 포기 각서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가 성우들과 맺은 계약서에는 ‘작업물에 대한 독점적 개발이용권 일체를 포함한 모든 종류 및 본질의 권리를 디즈니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 사무국장은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 양도를 명시한 ‘신(新)개발이용권’ 조항은 특히 문제”라고 했다. 이 조항은 ‘새로운 혹은 변화된 기술, 사용, 대중매체, 형식, 전송 방식 및 배포·보급·전시·공연의 방법들이 개발되면 작업물에 대한 권리 일체를 디즈니에 양도하고 이전한다’는 내용이다.

관행이 된 매절계약보다 더 힘든 건 ‘목소리를 뺏기는 일’이라고 했다. 더빙에 참여했지만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거나, 작품 참여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 빈번했다. 디즈니가 성우들에게 지급한 계약서에는 ‘실무관행에 따라 본인의 이름(본인의 직업명 또는 가명 포함)이 게재될 수도 게재되지 않을 수도 있음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넷플릭스 파트너사인 한 대형 벤더사(녹음실)는 더빙 참여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하는 보안 유지 서약을 맺기도 했다.

최 사무총장은 “우리도 노동자”라고 했다. 성우를 포함한 방송연기자들은 2018년 대법원 판결로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어렵게 얻은 권리가 글로벌 OTT 앞에서 무력화되는 것이 참담하다”며 “출연료 지급 기준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 진출 초기 방송사 대비 출연료 2배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지만, 현재는 공중파 최저 금액의 80%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다”고 주장했다.

공룡이 된 OTT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성우들의 목적은 싸움이 아닌 공정한 협상이기 때문에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성우들은 목소리를 통해 영향력을 실어나르는 사람”이라며 “OTT는 물론 게임 캐릭터 등 여러 분야에 성우 목소리가 쓰이지만, 그에 따른 처우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영영 권리를 찾을 수 없을 거란 위기감에 협상을 제안하고 나섰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성우들의 권리 보호와 약자의 미디어 접근권 향상을 위한 ‘우리말 더빙 법제화’ 운동에도 힘을 실을 계획이다. 국내에 공개되는 해외 콘텐츠의 한국어 더빙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는 자국어 보호법에 따라 지상파 방송에서 자국 언어 더빙을 의무화하고 있다.

최 사무총장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협상에 미온적이던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측에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우선 OTT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더빙 법제화를 위해서도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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