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조절 장애일까, 못된 세살 버릇일까 .. 슬로플레이를 보는 시선 [오태식의 골프이야기]

오태식 2022. 1. 1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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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나. <사진 AFP 연합뉴스>
브라이슨 디섐보. <사진 AFP 연합뉴스>

미국골프재단이 매년 미국골프지표를 조사하는데, ‘코스에서 가장 짜증나는 일은?’이라는 설문에 50% 이상이 슬로 플레이를 꼽는다고 한다. 이처럼 압도적으로 많은 골퍼들이 늑장 플레이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이유는 자신이 상대의 늑장 플레이로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골프의 역사에서 슬로플레이 논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에 출전해 우승을 다퉜던 재미동포 케빈 나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케빈 나는 퍼팅을 하자마자 공을 집으려는 듯 홀을 향해 걸어가는 행동을 자주 한다. 퍼팅 성공에 대한 확신에 찬 행동으로 언제부터인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4일(한국시간)부터 17일까지 나흘간 미국 하와이주 와이알레 골프장(파70)에서 벌어진 소니오픈은 케빈 나가 지난 해 우승한 대회다. 올해 첫날에도 9언더파 61타를 치면서 단독선두에 나서는 등 기분 좋은 인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 골프 TV 리포터가 “퍼트를 하면서 걷는 케빈 나는 질리지 않아”라고 트위터에 올리고 이에 PGA 동료 그레이슨 머리(미국)가 “케빈 나가 퍼트하는 데 3분이 걸리는 것에 질린다”고 하면서 논쟁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도 슬로플레이 탓에 자주 지적을 받았던 케빈 나가 스스로 경기 속도를 빨리 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한동안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그 소용돌이에 말려든 것이다.

더군다나 케빈 나가 머리를 향해 “네 컷탈락에 질린다”고 맞받아 치고 다시 머리가 “슬로플레이에 벌타를 준다면 너는 절대 컷통과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불붙은 논쟁에 기름 부은 꼴이 됐다.

2017년 바바솔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머리는 지금은 툭하면 컷탈락하는 선수다. 2020~21시즌 22개 대회 에 출전해 14번 컷 탈락했고 2번은 기권했다. 지난 7월 알콜 중독 증세가 있다고 밝힌 머리는 그 후 대회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조용할만하면 다시 터지는 슬로플레이 논쟁은 골프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골프의 영원한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불과 1~2년 전에는 브라이슨 디섐보의 슬로플레이를 브룩스 켑카가 비판하면서 둘은 화합할 수 없는 ‘앙숙’이 되기도 했다.

골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슬로플레이 선수를 겨냥한 비판과 조롱 섞인 말들이 많다.

옛 세계 1위 루크 도널드는 “슬로 플레이는 골프를 죽이는 행위”라고까지 했다.

로베르토 데 비센소는 언젠가 저녁 식사가 어땠냐는 질문에 “잭 니클라우스 같았다. 아주 좋았고, 아주 느렸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여섯 방향에서 퍼팅 라인을 읽는 것으로 유명했던 니클라우스는 느린 플레이로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골프 전설 중 한 명인 벤 호건도 악명 높은 슬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는데, PGA 투어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샘 스니드는 “호건의 퍼팅을 기다리는 동안 시가 한 대를 다 피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골프는 주어진 일정한 시간을 동반자들이 사이좋게 나눠 써야 하는 스포츠다.

공통으로 쓰는 시간도 있고 나 자신만 사용하는 시간도 있다. 예로 티샷을 할 때는 각자 시간을 쓰는 것이고, 페어웨이로 향해 갈 때는 공통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빠르다거나 늦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100명의 선수가 대회에 출전할 경우 그들이 72홀 동안 쓴 시간을 모두 합해서 순서를 매기면 가장 빠른 선수부터 가장 느린 선수까지 일렬로 세울 수 있다. 누군가는 가장 빠르고 누군가는 가장 느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늦는 선수는 대체로 늘 늦고 빠른 선수는 항상 빠르다는 점이다.

그럼 슬로플레이는 고칠 수 없는 ‘3살 버릇’일까, 아니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 조절 장애’처럼 ‘시간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시간을 조절하기 힘들어 하는 골퍼들이 분명 있다. 대체로 장타자보다 거리 짧은 선수가 시간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샷을 가장 먼저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샷을 준비하는 시간이 모자랄 것이고 아무래도 온그린을 못할 경우도 많아지기 때문에 그린 근처에서 샷을 한번 더 하거나 그린 위에서도 시간을 더 소비할 수 밖에 없다. 장타를 못 치지만 화려한 쇼트게임 능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케빈 나도 기본적으로 시간을 많이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장타자 중에서도 디섐보처럼 슬로 플레이로 비난 받는 선수가 있는데, 그건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를 ‘필드의 물리학자’라고 하는 이유에는 존경의 뜻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비꼬는 의미도 포함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슬로플레이를 쉽게 고칠 수 없는 세 살 때 버릇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골프를 ‘신사의 게임’이라고 한다면 다음 두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바로 ‘배려’와 ‘공정’이다. 특히 시간과 관련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슬로 플레이어는 그 배려와 공정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느린 골퍼 중에서도 특히 성적이 좋은 선수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존경 받는 골퍼가 되고 싶다면 상대를 배려해 빠른 플레이를 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게 힘들다면 조금이라도 빠른 골프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욕을 먹지 않을 것이다.

여기 슬로 플레이에 관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수긍할만한 두가지 글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선수는 (내가 샷을 해야 하는 데, 앞에서 샷을 하고 있는) 바로 앞조 골퍼이고, 가장 빠른 골퍼는 (내가 샷을 하고 있는데) 지금 뒤에 와서 기다리는 바로 뒷조 골퍼다.’

‘슬로 플레이어를 가장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더 느린 슬로 플레이어를 붙여주는 것뿐이다.’ [오태식 골프포위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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