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국민서당 훈장'으로 살렵니다"

이진한 2022. 1. 16. 18: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자 유튜브 채널 개설한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일상생활속 한자풀이로
'한자는 어렵다' 선입견 깨
최고 인기는 성명풀이
나훈아 이름 영상 16만 조회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난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어느 교사가 한 학생에게 "너 이지적이다"고 칭찬했더니 '이지(理智)'를 'easy'로 알아듣고 '쉬워 보인다는 말씀이냐'고 되물어왔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대학가에서는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오해해 기한 내에 과제를 내지 못한 대학생과 교수의 대화가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어휘력과 문해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가 성장하면서 말뜻을 오해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보수층의 과잉된 문제의식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초등 교과서 한글·한자 병기 방침을 두고 교육계가 보수·진보로 갈라져 수십 년째 '이념 논쟁'을 빚는 배경이다.

일생을 한문학 연구에 바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는 "한자 공부가 어렵다는 주장에 일견 공감한다"며 "그러나 한자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고 개념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보자는 목적에서 2019년 유튜브에 '한잘알:한자잘알려드림' 채널을 개설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자 단어를 풀어주는 콘텐츠가 핵심이다.

한자 알리기는 김 교수의 평생 과업이다. 1983년 처음 강단에 선 그는 2003년부터 2019년 말까지 17년 동안 고려대 평생교육원에서 150명 내외 일반인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개 강의를 열었다. 김 교수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한자와 사서삼경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맡은 강의였기에 강의료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튜브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대면 강의를 열지 못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시작했다. 자녀에게 도움을 받아 영상을 올리기 시작해 지금은 6000명이 넘는 구독자에게 한자를 알리고 있다.

한잘알 채널은 김 교수 말처럼 일상 친화적이다. 왕십리·우면동 등 지명의 뜻풀이를 비롯해 지난해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묘서동처(猫鼠同處)' 같은 사자성어의 뜻과 유래를 알려준다. '한자는 여혐(여성혐오) 문자인가?' 등 시의성 있는 주제도 곧잘 올라온다. 최근에는 정치인·연예인 등의 이름을 풀이하는 영상도 올리고 있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사적인 견해를 더하지는 않는다. 채널에 있는 200여 개 영상 중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콘텐츠는 가수 나훈아의 이름풀이였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지난 13일 기준 약 16만회로 집계됐다.

김 교수가 요즘 주력하는 콘텐츠는 유학 경전을 해설하는 '횡설수설 사서삼경' 시리즈다. 국립대만사범대에서 다산 정약용의 논어 주해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동양 철학은 한자만큼 알리고 싶은 핵심 콘텐츠다. 김 교수는 "공자 말씀의 핵심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중 인(仁)이며 그 방법은 애인(愛人)이다. 집 밖으로 외출하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라며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산은 인을 행하는 방식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며 "이는 현대 사회에도 통하는 말씀"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의 목표는 '국민 서당 훈장'으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한자 문화권인 한국에서 한자를 공부하는 건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민이 보다 정확하게 국어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수백 년 전 한반도를 대표했던 석학들의 가르침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