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는 한겨레] 소통의 가능성

정환봉 2022. 1. 1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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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글자의 무게만큼 닫힌 공간이 허물어지고, 그 틈으로 흐른 내가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것은 멋진 일인 동시에 무서운 일입니다.

열린편집위원들은 그해 가장 적극적인 한겨레 독자입니다.

한국 언론 환경에 여러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한겨레가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적도 여러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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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는 한겨레]

정환봉 | 소통데스크 겸 불평등데스크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내게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가령 내가 안녕이라고 쓰면,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큼의 구멍이 내게 뚫려서, 그때껏 닫혀 있던 나의 안쪽이 바깥과 이어진다. (중략) 쓴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리는 것이다.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투명한 상자, 혼자서 하는 모험’ 중)

글자의 무게만큼 닫힌 공간이 허물어지고, 그 틈으로 흐른 내가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것은 멋진 일인 동시에 무서운 일입니다. 용기를 내어 틈을 비집고 나갔지만, 환영을 받을지 박대를 받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사 역시 마찬가지 같습니다.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를 송고하는 순간 그 글은 수많은 독자에게 가닿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쓴 기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진심이 제대로 전달될지, 혹시 오해를 낳지 않을지 등 기대 반, 걱정 반을 하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말과 글이 점점 더 사나워지는 요즘에는 걱정이 반을 훨씬 넘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볼 때도 있습니다. 한겨레에는 열린편집위원회가 있습니다. ‘독자 권익을 보호하고 높이기 위한 자문기구’로 독자의 목소리를 편집위원회 등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열린편집위원들은 다달이 한차례 회의를 열어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를 점검합니다.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7명의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9기 열린편집위원회가 활동을 했습니다. 열린편집위원들은 그해 가장 적극적인 한겨레 독자입니다. 소통데스크로서 매번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몇월 며칠 몇면 기사’라고 정확히 꼽으며 의견을 말하는 위원들을 보며 반성하곤 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한겨레 기사를 살핀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열린편집위원회의 특성상 회의에서는 쓴소리가 훨씬 더 많습니다.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던 기사에 대해선 어김없이 회의에서 비판의 소리가 나옵니다. 한국 언론 환경에 여러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한겨레가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적도 여러번입니다. 열린편집위원들의 조언은 한겨레가 변하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 한겨레가 대선을 앞두고 진행하고 있는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 청년 100명을 모아 각 대선 캠프와 토론을 벌이는 ‘청년 5일장’ 등은 ‘정쟁보다 정책에 주목해달라’ ‘정치인이 아닌 시민이 중심이 되는 기사를 써달라’와 같은 열린편집위원들의 거듭된 당부가 영향을 미친 사례입니다.

열린편집위원회에서 경험한 것은 소통의 가능성이었습니다. 한겨레 기사는 열린편집위원에게 가닿았고, 그 피드백이 다시 한겨레에 이어졌습니다. 쓴소리가 더 많았음에도 그 과정이 상처이긴커녕 기쁨일 수 있었던 것은 애정 어린 비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 한겨레는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한겨레 1호 독자를 자처하며 이어짐의 선순환을 만들어준 김민정 열린편집위원장과 김경미·김보림·김준범·임자운·황세원·홍윤희 위원께 감사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며 올해 몇가지 바람을 꼽아봅니다. 한겨레가 좋은 기사로 독자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사가 독자와 제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나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독자들께도 애정과 신뢰를 부탁드립니다. 현장 기자들에게 보낸 욕설과 인신공격 가득한 전자우편 등의 기사 피드백을 가끔 건네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부터도 독자들과 이어지는 것이 몹시 두려워집니다. 비판은 언제나 겸허히 듣겠습니다. 하지만 도 넘은 혐오마저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안녕하세요’, 다섯 자를 적어봅니다. 새해를 맞아 다섯 자만큼 글자가 가진 질량이 허문 틈을 시작으로 독자분들과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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