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살리는 힘, 살림의 정치

한겨레 2022. 1. 1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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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이름은 '살리는 선대위'였다.

희망을, 정의를, 국민을, 나라를 살리는 힘이 되겠다고 했다.

이번 선거, 이대로 가면 국민의 힘은 빠지고 얼은 썩겠다.

살리는 힘, 살림의 정치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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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6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 선대위 출범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이름은 ‘살리는 선대위’였다. 희망을, 정의를, 국민을, 나라를 살리는 힘이 되겠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 5일 살리는 선대위를 가차없이 죽였다. 이후 그의 행보는 ‘멸공’과 ‘안티페미니즘’으로 요약된다.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6070 태극기부대와 ‘페미는 정신병’을 외치는 2030 남초 커뮤니티를 공략했다. 지지율은 반등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자로 공약 발표를 하고, ‘#멸치 #콩’ 해시태그 말장난에 동참하여 표심을 노렸다. 대한민국 보수 후보의 단골 메뉴인 반공산주의가 반여성주의로 계승되는 역사적 현장이다.

혐오는 잘 팔린다. 편을 가르고 화를 부채질하면 힘이 모인다. 그러나 그 힘은 살리는 힘이 아니다. 죽이는 힘이다. 멸공, 공산주의자를 멸하는 것은 어떻게 읽어도 폭력이다. 한반도 북반부의 사람들을 쳐부수어 없애자는 뜻이다. 아니, 그들이 먼저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공산당이 싫은 게 당연하지 않나? 자유주의자인 나 역시 공산당이 싫다. 그러나 멸공을 외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다원주의와 관용이 기본인 리버럴리즘은 누구도 타자화하여 멸하지 않는다. 나와 다르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는 존재도 포용한다. 그것이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고,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아름다운 이유다. “꼬우면 북으로 가라!”고 성내는 이야말로 가장 북한에 어울리는 전체주의적 인간이다.

반여성주의 언어도 폭력이 난무한다. ‘멸녀’에 가깝다. 아니, 페미들이 먼저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남’ 운운하는 페미니스트가 싫은 게 당연하지 않나? 한국 남성인 나 역시 일부 배제적인 여성주의를 경계한다. 공산주의, 즉 급진 사회주의가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을 필연으로 보듯이 급진 여성주의는 여성과 남성의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하지만 남혐이 있기 전에 여혐이 있었으며, 강남역 살인사건과 엔번방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전쟁은 남침이 원인이지만 젠더 갈등은 남혐이 원인이 아니다. 문명사만큼 뿌리 깊은 가부장제 때문이다. 반공주의가 반자유이기 때문에 반동이라면 안티페미니즘은 반평등이기 때문에 백래시, 즉 반동이다.

언론에 비친 엠제트(MZ)세대는 화가 나 있다. 화난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다. 우르르 몰려가 댓글을 달고 신상을 턴다. 조롱하고 헐뜯는다. 후보들은 이기기 위해 목소리 큰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단언컨대 엠제트세대의 절대다수는 화가 나 있지 않다. 화낼 기력도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희망을 잃었다. 기후·생태위기와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 불안하다.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세대 전체가 사회적 약자라고 느낀다.

대선은 엠제트세대의 스윙 보터, 무당층이 결정할 것이다. 건국 이래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투표자다. 철저히 정책 위주로 판단한다.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정치가 아닌 살리는 정치를 원한다. 살림하듯이 정치해야 한다. 집안에서 딸아들이 다투면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고 공감하는 게 우선이다. 중재하고 통합하여 화목하게 해야 한다. 식구 모두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필요하다. 갈라치기하여 한쪽 편을 들고 갈등을 부추기는 건 나쁜 아버지다. 한 나라를 이루어 살아가는 일, 나라 살림의 기본은 집안 살림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연대다. 혐오와 분열은 죽임의 힘이다.

사랑은 지혜롭고 혐오는 어리석다. 혐오를 일삼다 보면 말 그대로 얼이 썩는다. 이번 선거, 이대로 가면 국민의 힘은 빠지고 얼은 썩겠다. 살리는 힘, 살림의 정치를 요청한다. 나라를 이끌어갈 이들이 살림의 기본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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