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을 가진 인간의 친화력

한겨레 2022. 1. 1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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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대통령은 종교계 지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인간의 친화력은 특별하다.

정치와 종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친화력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인간의 탁월한 친화력 이면에는 무자비한 공격성이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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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뉴노멀-종교] 구형찬 | 인지종교학자

지난 12일 대통령은 종교계 지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의견을 청취하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개신교, 불교, 가톨릭, 원불교, 유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이른바 ‘7대 종단’에 속하는 10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대통령이 종교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호소하는 것은 국민 통합을 위한 종교의 역할이다. 종교에 통합의 해법이라도 있는 걸까? 종교는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협력하게 하는 힘이 있지만, 오히려 분열과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종교는 인간이 지닌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의 특징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인류가 지금처럼 지구상에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타인과 협력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친화력’을 꼽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대한 특징들은 특유의 친화력이 진화하는 과정과 함께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친화력 선택 가설’이다.

인간의 친화력은 특별하다. 다른 동물들의 협력은 대개 한 서식지에서 같은 무리를 이루며 사는 친족에게 한정된다. 같은 종이라도 친족이 아니면 잘 돕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협력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무언가 공통의 정체성을 발견하면 된다. 인간은 응원하는 스포츠팀, 음식 취향, 좋아하는 연예인이 같은 사람끼리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 역사와 신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며 협력하기도 한다. 반대로 같은 정체성 표지가 지각되지 않는 사람과는 쉽게 적이 될 수 있다. 정치와 종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친화력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친화력은 공격성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에 있다. 개는 사람과 협력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친화력을 갖고 있지만,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을 위협하는 외부자에게는 강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는 친화력과 공격성 모두가 일명 ‘애착 호르몬’, 즉 옥시토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포유류는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할 때 자기 식구에게 더 자상하게 행동하고 남에게 더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목숨이 아깝다면 아기곰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곰의 신경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간도 체내 옥시토신 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다른 포유류와 다르지 않다. 다양한 실험에서,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코로 흡입한 사람들은 내집단 구성원에게 더 관대해지고 외부자에게 더 공격적으로 행동했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단지 합리적 판단의 산물이 아니며,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생물학적 과정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탁월한 친화력 이면에는 무자비한 공격성이 상존한다. 외부자가 느끼는 공포와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잔인함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잔인한 공격성은 외부자를 비인간화할 때 극대화되고 쉽게 퍼져나간다.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에서 늘 겪는 일이다. 이는 도덕 교육과 계몽으로는 잘 통제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가장 유력한 해법은 ‘접촉’의 경험에 있다. 외부자로 지각된 사람과 만나는 기회를 늘리면 잔인한 공격성이 표출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친구가 있는 집단을 비인간화하지 못한다.

지난 간담회에서는 선거 시기 집단 갈등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선거철에는 인간 친화력의 양면성을 이용해 갈등을 조장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된다. 종교도 결부되어 있는 문제다. 정치와 종교가 잔인해지면 끝이 없다. 그러나 기억하자. 인류는 친화력의 장점을 살려 더 나은 삶을 개척해왔다. 접촉과 만남으로 이루어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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