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NFT가 자유를 줄까?

한겨레 2022. 1. 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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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비트코인의 가치는 국가가 아니라 그것을 믿고 그것에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ㅣ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우리의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두 현상은 비트코인과 엔에프티(NFT·대체 불가능 토큰)다. 비트코인과 엔에프티는 공통적으로 국가기구를 우회하여 관련 당사자 간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구축하려는 자유지상주의적인 개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의 1%만이 판을 지배하고 조작하는 것을 본다. 비트코인과 엔에프티는 우리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새 공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투기 자본주의의 최신 버전 광기도 아니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국가기구가 아니라, 그것을 믿고 그것에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 냉혹하고 무자비한 금융 투기의 영역에 믿음의 문제가 끼어드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처럼, 그것을 믿는 사람이 충분히 많이 있을 때만 실제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 최소한 주가는 ‘진짜’ 생산으로부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상품에 대한 투자를 지시하지만, 비트코인은 순수하게 자기참조적이다. 비트코인은 금과 달리 ‘진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디지털 대타자의 시대에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광부들을 19세기 광부가 맡았던 역할을 하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로 만든다. 이들의 노동으로 생산되는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다.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은 광산 채굴보다 더 무거운 부담을 생태계에 지우기도 한다. 국가기구로부터 독립적인 글로벌한 화폐라는 개념은 잠재적 진보성을 갖긴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전제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엔에프티도 비슷하다. 엔에프티는 예술가의 자율성을 기구의 통제에서 구하기 위한 탈중앙화적이고 자유지상주의적인 시도로 발명된 토큰이다. 누구나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엔에프티는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에 인위적 희소성을 부여하여 온라인 공간에서의 소유를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다.

흥미로운 점은 엔에프티가 누구나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에 대해 소유주임을 증명하는 개념이라는 점, 즉 엔에프티에는 (소유자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 외의) 사용가치는 없고, 교환가치만 있다는 점이다. 가격이 매겨진 복제본이자, 미래에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순수하게 상징적인 소유권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헤겔적 통찰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비트코인과 엔에프티가 화폐와 상품의 ‘정상적’ 기능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난 예외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실은 화폐와 상품이라는 개념에 내재한 잠재성을 오히려 효과적으로 실현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이다. “암호화폐는 자유지상주의적이지만, 인공지능은 공산주의적이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을 감시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레닌주의적이다.” 틸은 이렇게 자유지상주의를 옹호해놓고는 빅데이터 분석 기업과 감시기술 기업들을 설립하여 자신이 레닌주의적이라고 비난한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 다른 예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스티브 배넌이다. 그는 자신을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국가기구를 모조리 무너뜨리고자 하는 ‘레닌주의자’라고 선언했다. 배넌은 그렇게 말해놓고 트럼프의 선거운동에 인공지능을 거리낌 없이 활용했다. 배넌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던 데이터분석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수백만 미국 유권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에 기반한 심리적 프로필을 구축하여 대선에 활용했다.

이들은 모두 자유지상주의의 얼굴을 한 디지털 통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통제와 조작은 자유지상주의적 기획의 예외적 이상현상이나 일탈이 아니다. 디지털 통제와 조작은 그 기획에 필수적인 기반이자 형식적 조건이다. 자유지상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는 디지털 통제를 통해 우리의 자유를 규제하는 조건 아래서 우리에게 자유를 허용한다. 체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형식적인 자유 속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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