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회식서 대표에 폭행당했는데 '개인 집'이라고 산재 불인정..형사사건 재판부는 대표에 '징역형'

유선희 기자 2022. 1. 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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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대문구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8년 동안 근무한 A씨(42)는 스포츠센터 대표 B씨(48)로부터 반복된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특히 술을 마시면 군기를 잡는다며 때리는 일이 잦았는데, 2년 전 사달이 났다. 2020년 9월4일 오후 8시쯤 A씨는 B씨의 집에서 함께 술자리를 하다 폭행을 당했다. B씨의 집에서 가진 ‘3차 회식’ 자리에서 B씨는 소주병을 깨고 A씨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A씨는 이 폭행으로 전치 8주(안와바닥 골절) 진단을 받고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상처가 깊었다. A씨는 고민 끝에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 경찰, 직장갑질119의 문을 차례로 두드렸다. A씨의 중요 관심은 “직장내 괴롭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지”였다.

병원 치료를 받으며 A씨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근로복지공단 서울서부지사였다. 회식자리에서의 폭행인 만큼 업무상 재해로 보고 요양급여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공단은 “업무수행 후 1~2차에 걸친 회식을 마치고, 2차 회식의 여흥을 이어가기 위해 즉흥적으로 결정된 사업주 자택에서의 술자리는 친목도모를 위한 자리일 뿐”이라며 “노무관리 또는 사업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낸 근로기준법 위반 신고도 비슷한 이유로 기각됐다. 근로기준법상의 사업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A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을 했지만 대표가 저에 대해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낸 동업자 관계’라고 주장하고, 이 부분을 (당국이) 인정하면서 이 사건에서 제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를 폭행하지 못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사사건에서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지난 7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상해혐의로 기소된 B씨에 대해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려 상해를 가했음이 인정됨에도 피고인은 극구 부인하며 아무런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체육계 선배이기도 해 폭행이 있어도 넘어간 적이 많았는데 신고 당시에는 상처가 너무 커 누구하나 죽어야만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직접 나서게 됐다”며 “재판을 통해서나마 상습폭행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엄연히 직장 상사와 직원 간 관계에서 진행된 회식자리인데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며 “근로감독관들은 ‘이 사건은 형사사건’이라는 식으로 대하고, 가해자와 대질조사도 진행해 힘들었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A씨가 투자금을 냈다고 하더라도 대표와 직원으로 관계가 설정돼 있었다. 직장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은 ‘특별한 우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이나 폭행 등은 훨씬 더 면밀하고,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기준법상 폭행은 형법보다 더 엄벌에 처해지는데, 근로계약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3차 회식장소 부분도 다투지 않고 돌려보낸 것은 노동당국의 직무유기”라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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