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3인 "문학은 가장 약하고 뒤처진 이들을 위한 것"

김지혜 기자 2022. 1. 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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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백가경 시인, 황유지 문학평론가, 김채원 소설가(왼쪽부터)가 지난 10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신인 문인들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인 백가경 시인, 김채원 소설가, 황유지 문학평론가를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가장 약하고 뒤처진 이들의 곁에 끝까지 남는 문학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백가경 시인 “삶의 새판을 짜는 작가로”

백가경 시인. 김영민 기자


“글을 쓰고 싶어서 에디터가 됐는데, 막상 글을 쓴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백가경 시인은 월간 디자인 등 여러 매체를 거치며 에디터로 일해왔다. 주로 디자인 분야에서 글과 영상을 아우르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브랜드, 작가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글을 주로 써오던 그에게 시는 새로운 욕망을 일깨웠다. 시라는 형식 안에서 한계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을 지나던 2018년이었다. 회포를 풀 듯 무던히 읽고 썼다.

당선작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은 정글짐의 기원에서 시작하는 시다. 정글짐에서 그는 ‘집’을 떠올렸다 “각각의 칸을 가진 정글짐이 아파트나 원룸촌, 고시촌의 구조와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자기의 위치를 감각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도 정글짐을 오르고 내리는 것과 닮았고요. 집이라는 것을 살 수도, 심지어 꿈꿀 수도 없는 처절한 현실을 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시의 형식으로 말하고 싶었어요.”

힘든 시기마다 도서관에 박혀 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그에게 문학은 “가장 뒤에서 마지막까지 약자를 위해 존재하고 기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들을 느리지만 깊이 있게 써나가보고 싶다”면서 “최근에는 여성의 서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여러 편의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아직 더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고 했지만, 시인으로서 포부는 명확하다. “작가 주나 반스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는 바른 예술가와는 삶을 관조하고 시적인 예술가와는 삶을 새로 짠다’고요. 삶의 새판을 짜는 것을 도와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요.”

▶[2022 경향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 백가경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2022 경향 신춘문예]시부문 당선소감 - 기억과 기록…오래 써나갈 것

▶[2022 경향 신춘문예]시부문 심사평 - 미학적 자유로움은 정확함 위에서 탄생한다는 것 보여줘

■김채원 소설가 “글쓰기는 감정을 견디는 과정”

김채원 소설가. 김영민 기자


김채원 소설가는 스물 다섯에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고, 스물 여섯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20대 중반에 대학에 다시 입학하기로 한 결심에는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숨기는 게 아니라 그냥 가보자 해서 갔어요. 어쩌다가, 넘어지듯이 그렇게 됐어요.” 그는 올해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시대다. 그는 “글쓰기가 나를 먹여 살리게 할 게 아니라, 내가 나의 글쓰기를 먹여 살리겠다는 다짐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당선작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는 2020년 겨울에 쓴 소설이다. 찌는 듯한 더위를 담아낸 소설이지만, 겨울에 썼고 또 겨울에 발표됐다. “죽은 친구가 있고, 그 친구의 집을 정리하러 가는 세 친구의 이야기인데요. 친구를 떠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애도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그의 소설은 상실의 근처를 천천히 에두른다. 문학을 “(발 빠르게 의견과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가장 나중에 뒤를 도는 사람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다운 작품이다.

그의 글쓰기는 감정을 배우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한다. “한나 아렌트의 책에서 읽었는데, 인용된 문장이었어요. ‘슬픔을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하면 모든 슬픔을 견딜 수 있다’더라고요. 여기서 슬픔 대신 기쁨, 사랑 같은 단어를 넣어도 될 것 같아요. 제게 글쓰기는 어떤 감정을 견디거나 겪어내는 과정이에요.”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채원이 쓴 것 같다’고 느껴지는 글을 계속 쓰고 싶어요.”

▶[2022 경향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작 -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2022 경향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 - 나를 지탱하는 소중한 소설, 계속 읽고 쓰겠다

▶[2022 경향 신춘문예]소설부문 심사평 - 독특한 언어 감각으로 ‘세대적 감수성 형상화’ 돋보여

■황유지 평론가 “내게 문학은 지연이었다”

황유지 평론가. 김영민 기자


“제 문학은 계속된 지연이었어요.” 황유지 문학평론가는 문학이 자신의 삶에 도래하는 과정도, 우리 사회에서 문학의 역할도 ‘지연’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한다. 문예창작학과 학부를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하다 뒤늦게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이후에는 콘텐츠 연구소에서 일을 하며 경영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았지만, 이내 다시 문학으로 돌아갔다. “내 세계가 이미 문학의 언어로 구축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박사 수료 이후 2년은 직장도 그만두고 온전히 문학평론에만 몰두했다. 그는 “이번 당선을 혼자만의 말하기가 아닌 세상을 향한 말하기를 할 준비가 됐다는 승인으로 여기고 더 잘해야겠다는 투철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나 사회가 지연될 때, 앞서가는 정상궤도와 낙차가 발생하는데 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데서 문학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지연의 이유가 폭력적 구조나 상황 때문이라면 문학은 그것에 대해 얼마든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선작 ‘하마르티아, 일하는 몸들의 운명’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아낸 평론이다. 그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숨 작가의 소설 <제비심장>을 통해 육체 노동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되묻는다.

그는 문학을 ‘방과후 교실’에 빗댔다. 그는 “내 안에는 미처 묻지 못한 채 자라지 못하고 남아있던 질문들이 있다. 문학은 내가 다시 묻기를, 스스로 답을 내리기를 기다려주는 선생 같다”고 말했다. 마냥 선생 같던 문학의 장 속에서 그의 역할을 찾아내야 할 순간이다. “성장만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뒤처진 이들의 지연과 그 이유를 기입하고 싶어요. ‘유연한 지성’에서 따온 필명 처럼, 유연하고 씩씩하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려 합니다.”

▶[2022 경향 신춘문예]문학평론 당선작 - 하마르티아, 일하는 몸들의 운명

▶[2022 경향 신춘문예]문학평론 당선소감 - 비로소 마주한 ‘말문이 트이는 순간’

▶[2022 경향 신춘문예]문학평론 심사평 - 노동과 노래가 교환되는 현장을 적은 글…비평적으로 아름답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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