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위기의 정의당, 진보 정치의 초심으로 돌아가라
(서울=연합뉴스) 정의당이 대통령 선거를 50여 일 앞두고 위기에 빠졌다. 심상정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유세 일정을 전격 중단한 데 이어 다음 날 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정의당은 15일 비상 연석회의를 열어 선대위 전면 쇄신을 결의했으나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열을 정비해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칩거 나흘 만인 16일 광주의 신축 아파트 붕괴 현장을 찾아 활동을 재개한 심 후보가 다음 날로 예정된 당 대표단-의원단 회의에서 어떤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 혼란의 배경은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낮은 지지율이다. 심 후보의 지지율은 최근 여론 조사에서 오차 범위 내라고 하지만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보다 낮은 2.2%로 나타났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6%대의 득표율을 기록한 심 후보로서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무력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심 후보를 중심으로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 가자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면서 "변화와 쇄신을 통해 진보 정치의 소명, 정의당의 시대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정치의 건강성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의당과 심 후보가 조속히 혼란을 수습하고 대선 레이스에 힘차게 복귀하길 바란다.
정의당 부활의 관건은 결국 지지율 회복 여부이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의미 있는 지지율이나 득표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이다. 하락의 원인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나친 공격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반대로 민주당과 관련한 정의·공정 이슈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진보 정당 만으로서의 색깔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래의 주역인 청년층은 시대를 한 발짝 앞서 이끌어나가는 진보 정당의 옥답이어야 하는데 그들에게조차 정의당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만큼이나 기득권에 집착하는 낡은 정당으로 비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듯한 주장을 간판으로 내걸고 적당히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취업난과 양극화에 지친 청년들에게 고장 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공허한 구호는 감흥을 주지 못한다. 정의당이 추구하는 인권, 노동, 복지, 환경, 성평등 등의 가치가 어떻게 삶을 나아지게 하는지, 또 이런 목표를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정의당은 진보 정치의 원조 대표 정당으로 당세 이상의 의미와 무게가 있다. 건전한 사회 발전과 정치의 역동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정의당이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공약으로 내걸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나중에 입법으로 현실화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아직 집권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우리 정치의 한 축으로 사회 발전을 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대선에서 거대 양당이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이에 따라 진영 대결이 갈수록 첨예해지면서 정의당이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은 제1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주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켰는데 이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시각도 있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정의당으로서도 절실한 제도였으나 정당성 측면에서 민주적 절차에 소홀했고, 실리 측면에서도 여야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쪽박까지 잃게 됐다. 정의당이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과 명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진보 정당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분단 상황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 정치는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지만, 한쪽 날개가 없는 새가 오래 날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심 후보와 정의당이 철저한 자기 성찰을 통해 다시 한번 국민 앞에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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