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바이든 집권하자 김정은 미사일 쏘기 시작"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2. 1. 1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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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사기' 음모론 본진 애리조나서 새해 첫 정치집회
방역, 외교, 경제 분야에서 바이든 난타
"푸틴, 시진핑, 이란 미국 무시, 나 때는 감히 생각 못했다"

“나는 대선에 두 번 나갔고, 두 번 다 이겼다. 그러나 (민주당이) 선거를 빼앗아갔다.”

15일(현지 시각) 저녁 미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에서 60마일(약 100km) 떨어진 소도시 플로렌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2020년 대선이 사기라는 증거가) 도처에 있었음에도 주요 매체들은 이를 외면했다”고 하자 지지자 수천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트럼프는 노 타이에 검정색 코트와 함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선거구호가 적힌 빨간 색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그는 자신이 쓴 것과 같은 디자인의 모자 대여섯개를 들고 나와 청중들에게 던지기도 했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주최한 정치 집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집회에 참석한 차량의 길이가) 25마일이 넘는다”며 “이건 대선에서 진 사람의 (집회) 모습이 아니다. 이는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우리는 (중간 선거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정치인생을 끝낼 것”이라고 하자 지지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각) 미 애리조나주 외곽 도시 플로렌스에서 새해 첫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김정은 다시 미사일 쏘기 시작, 우리 땐 안 그랬다”

그는 이날 “우리 모두는 조 바이든이 그리 훌륭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 나라에 이렇게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에 최악이다. 물건값이 50%나 올랐고, 백화점, 식료품 점의 진열대에 상품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 (내가 현직이었을 때) 우리는 푸틴과 우크라이나 사안을 두고 문제를 빚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대만 문제를 두고 충돌할 일도 없었다”며 “북한 김정은은 다시 미사일을 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이는 (미국에 대한) 존경심 부족”이라며 “과거 같았으면 감히 하지 못할 행동들을 1년만에 (미국에)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곤두박질 쳤다. 더 낮다는 사람들도 많다”며 “심지어 (상점에서) 코로나 테스터기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방역 전략에서 철저히 실패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에 대해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외교 정책 굴욕”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 1월6일 ‘미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두고는 “대부분 비폭력 범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당파적인 민주당은 그들의 무기한적인 구금을 축하했다”며 “그 사람들은 지옥(감옥)에서 살고 있다. 감옥은 더럽고, 역겹다”고 했다. 이어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끔찍하다”며 “그들에게 변호사를 만나게 해줘야 한다. 나가게 해줘야 한다”고도 했다.

15일(현지 시각) 미 애리조나주 외곽 도시 플로렌스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정치 집회에 참석한 지지자들. /AFP 연합뉴스

◇공화당 텃밭 애리조나서 24년만에 패배, ‘대선 사기’ 음모론 핵심 지역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애리조나주를 새해 첫 집회 장소로 선택한 것은 자신의 ‘대선 사기’ 음모론이 상당 부분 이 지역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세가 강한 곳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작년 11월 대선 당시 애리조나주에서 1만500표 차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했다. 특히 애리조나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매리코파 카운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약 4만5000표 차로 승리했다. 애리조나에서 공화당 후보가 패배한 것은 24년만이었다.

그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에게 투표한) 표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불복’을 시작했다. 애리조나 입법부를 장악한 공화당 상원은 지난 4월 매리코파 카운티 투표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는 감사 실시안을 의결했다.

당시 감사를 진행한 보안업체 ‘사이버 닌자스’는 바이든이 작년 11월 카운티가 발표한 공식 집계치보다 99표를 더 얻었고, 트럼프는 261표가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선거 관련 업무를 맡아 본 적이 없는 신생 업체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유권자) 2만3000명이 이사한 이후 (전 주소로) 우편 투표를 하는 등 비정상적 형태가 발견됐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작년 대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선거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사이버 닌자스의 감사를 다시 조사하게 된 매리코파 카운티 선관위는 3개월 뒤인 지난 5일 93페이지 분량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부정 투표가 의심되는 2만3000명에 대해 “(임시 거주지가 자주 바뀌는) 대학생, 군인, 별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혼동한 것”이라며 “정식 등록돼 있는 주소에서 합법적으로 투표한 뒤 임시 장소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사이버 닌자스가 매리코파 카운티의 유권자 등록 통계자료 및 선거 결과가 통째로 지워졌다고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선 “시간 경과에 따라 기록 보관소로 이관한 뒤 선거 기록 시스템에서만 삭제한 것”이라며 “투표 결과는 그대로 남아있다”고도 했다. 제기한 의혹 모두 사이버 닌자스가 잘못 계산했거나, 관련 선거법을 잘 몰라서 제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트럼프는 “국민들이 부정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민주당의) 박해를 받고 있지만, (부정 선거를 증명할) 점점 더 많은 정보가 나오고 있고, 그 누구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안좋은 정보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지는 않았다.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가 1036명의 미국인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작년 12월 2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원 중 71%는 여전히 바이든 승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원은 91%가 바이든이 정당한 대통령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은 21%만 그렇다고 했다. 여전히 공화당 지지자들 상당 수가 ‘선거 사기’ 음모론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 곳을 찾은 것은 내년 중간선거와 2024년 대선을 겨냥, 이른바 ‘스윙스테이트’(경합주)를 본격 공략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15일(현지 시각) 미 애리조나주 외곽 도시 플로렌스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정치 집회에 참석한 지지자들. /AFP 연합뉴스

◇오미크론 난리에도 마스크 안써…'친위대’ 잇따라 트럼프 찬양

미 전역이 오미크론 변이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이날 집회에서 마스크를 쓴 지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 지지자들은 마스크를 쓴 기자를 가리키며 ‘왜 마스크 쓰고 있느냐’ ‘가짜 뉴스 생산하는 사람들이 여기 왜 왔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날 집회 시작 전에 트럼프의 ‘친위대’들이 무대에 나와 쏟아낸 발언들은 노골적이었다. 웬디 로저스 애리조나주 주의회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우리를 위해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삶은 훌륭했다”며 “트럼프는 우리를 위해 온갖 공격을 받아냈고, 결국에 그들(민주당)은 선거까지 빼앗아버렸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각) 애리조나주 외곽 도시 플로렌스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 등장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가 작년 11월 애리조나주 주지사 후보로 공개 지지(endorsement)한 애리조나주 지역 방송 앵커 출신인 캐리 레이크는 “우리 국경으로 쏟아지듯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있다”며 “내가 주지사가 되면 당신들은 체포되고 다시 국경 밖으로 쫓겨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주지사가 되면 (마스크 착용·백신 의무화 등의) 행정 명령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하자 군중들은 환호했다.

선거 분석 웹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공화당 후보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은 트럼프의 지지”라며 “(트럼프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공개 지지 권한을 이용해 공화당을 계속해서 자신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2024년 대선 선거판도 이끌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배개 회사 ‘마이필로’의 최고경영자이자 트럼프의 열렬 지지자인 마이크 린델은 “갑자기 왜 1년이 지나서 (1·6 사태와 관련해) 공격이 (우리에게) 몰려오고, 뉴스가 막 나오느냐”며 “이는 (부정 선거와 관련한) 우리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칼로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논란이 됐던 폴 고사 애리조나주 하원의원은 “미국은 ‘정의’라는 것을 못 본지 오래돼 지쳤다”며 “트럼프와 함께 미국을 되찾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했다.

이날 지지자들은 연설 중간 중간 마다 ‘렛츠 고 브랜든’을 외쳤다. 이를 단순 번역하면 ‘힘내라 브랜든’이라는 뜻을 가진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바이든 대통령을 욕설을 섞어 비난하는 구호로 쓰이고 있다.

작년 11월 공화당 강세 지역인 앨라배마주에서 열린 미국스톡카경주협회(NASCAR) 주최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NBC스포츠 기자가 우승자 브랜든 브라운과 인터뷰할 때였다. 당시 기자 뒤에선 관중들이 “엿 먹어라 조 바이든”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기자는 이를 잘못 알아듣고 관중들이 브랜든을 응원하는 의미의 ‘렛츠고 브랜든’을 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그 뒤로 ‘렛츠고 브랜든’은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표현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렛츠 고 브랜든’이 적힌 점퍼를 입고 집회에 참석한 케이티 미첼(54)씨는 기자에게 “작년 1월 의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민주당은 ‘반란(insurrection)’ ‘쿠데타’라고 한다. 이는 민주당이 트럼프에게서 대선을 훔친 것을 숨기기 위해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선 사기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것이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플로렌스(애리조나)=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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