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 교수 "중대재해법 우려? 공포 마케팅일 뿐"

김지환 기자 2022. 1. 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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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대재해처벌법의 체계> 출간 앞둔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 인터뷰

2월 초 <중대재해처벌법의 체계> 출간을 앞두고 있는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49·변호사)가 지난 1월 11일 경향신문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2020년 한해 사고로 882명, 질병으로 1180명이 사망했다. 하루에 6명가량이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숨진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경영계는 16개 조항으로 짜인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끊임없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처벌이 과도하다’, ‘법이 모호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법을 두고 위헌성 시비까지 불거지고 있다.

경영계의 우려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면 혼란이 빚어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속출할까. 2월 초 저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체계> 출간을 앞두고 있는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변호사·49)는 “과도한 공포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입법기술적으로 볼 때 중대재해처벌법 일부 조항을 매우 잘 만든 건 아니지만 위헌성 논란으로 이어질 만한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권 교수는 되레 수사의 한계 등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징입법’에 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동자가 죽거나 다친 것과 개인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간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법으로 올해 기소되는 사람이 10명을 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지난 1월 11일 서울 종로구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회의실에서 권 교수를 1시간 30분가량 만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체계>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

“법 제정 뒤부터 ‘과도한 처벌이 우려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공포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모호한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이 아니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했는데도 예상치 못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미리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기업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했는데도 이례적 요인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국가가 형벌권을 발동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녀사냥을 하던 중세가 아니다. 이번 책을 통해 사회적 논의의 초점을 위헌성 시비가 아니라 이 법의 취지인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로 옮기고 싶었다. 정말로 경영책임자 등이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건 산업사회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다. 누군가의 책임이라면 그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이 법이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개인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제2조(정의)를 보면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이 규정을 두고 경영계에선 ‘안전담당이사를 별도로 두기만 하면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에서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선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달리 ‘경영책임자 등’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것이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기업 규모가 클수록 조직이 중층적 구조로 돼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관리자들이 대표이사 볼 일이 거의 없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조직 의사결정의 정점에 있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현장소장, 공장장 등이 산안법 의무 위반으로 처벌받는 데 그쳤다. 예를 들어 안전 예산 부족에다 공기를 앞당기라는 압박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치자. 현장소장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런 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책임인가. 시스템을 만든 경영책임자의 잘못으로 보는 게 맞기 때문에 이 개념이 나온 것이다.”

-노동부가 해설서를 냈지만 여전히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계에선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선임하면 대표이사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이사의 책임은 기본값이다. 일각에선 안전담당이사를 두고 안전·보건 의무와 관련된 권한을 위임하면 기존 대표이사는 면책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희망 섞인 해석이다. 대표이사가 자기의 권한을 다른 임원에게 위임한다고 해서 대표이사의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엄폐물’을 만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및 유가족이 지난 1월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봇대 위에서 작업을 하다 감전돼 숨진,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한전 사장과 통화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한전 사장도 처벌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한 바 있다. / 한수빈 기자


-경영계는 법인이 아니라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기업살인법’도 법인을 처벌하되 개인은 처벌하지 않는다.

“법인은 영혼과 육체가 없다.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했을 뿐,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 결국 범죄의 주체는 법인과 관련된 사람이다. 대륙법의 전통이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는 건 그래서다. 물론 기업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법인의 범죄능력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법인에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법인 자체를 해산할 경우 실제로 죄를 지은 ‘사람’ 이외에 그 법인과 관련한 선량한 노동자, 주주, 회사채권자들이 입는 손실은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회사의 채권자는 물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의 주주도 회사의 경영상 의사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최고경영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해 의무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이 현행 형사법 체계에선 최선의 방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경영계는 ‘면책조항’ 신설도 요구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했을 때 190곳이 수사 대상이라고 추산했다. 190곳이 모두 유죄를 받는다면 면책 조항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의 형사 사법이 그렇게 엉성하지 않다. 우리나라 형법은 과실범을 따로 특정하고 있지 않을 경우 범죄가 성립하려면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중대재해라는 결과가 존재해야 하고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행위와 결과 간의 인과관계도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따져보면 올해의 경우 기소되는 사람이 10명이 안 될 수도 있다. 면책조항 신설이 아니라 되레 이 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 법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목숨이 쌓여서 만들어졌다. 이런 입법 맥락도 고려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하한형(1년 이상 징역형 등)을 정하고 있어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양형이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늑대가 온다고 외치지만 늑대는 없을 것 같다. 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감경할 수 있다. 징역 1년이 아니라 6개월로 감경할 수 있고, 집행유예 가능성도 열려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노동자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 의무를 해야 한다. 다만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는 조항(5조)에 따른 것이다.

-5조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 법 시행령을 보면 원청이 도급·용역·위탁 시 지켜야 할 기준이 나온다. 일을 맡길 때 최저가 입찰로 하거나 공사기간을 짧게 주는 것 등을 하지 말라는 취지다.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한다는 대목을 두고도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선소를 예로 들어보자.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사용하는 시설, 장비, 장소는 원청의 것인 경우가 많다. 하청업체가 아무리 조심해도 원청의 시설, 장비, 장소의 위험 때문에 발생하는 중대재해는 원청의 책임이다.”

-기존의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떻게 다른가.

“산안법은 기본적으로 감독행정에 관한 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정 부가배상에 관한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형사법이다. 산안법은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를 구체적으로 정해두고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노동부가 계속 감독한다. 산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해야 제재에 착수한다.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에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도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들려달라.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온도계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군(당시 15세)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살아 있었다면 나랑 같은 나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사건이었다. 그의 사망 이후 34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깔려 죽는다. 심지어 지금은 많은 사람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업에 감정이입을 한다. 기업은 경영상 이익을 자신의 것으로 다 가져가면서도 안전사고에 따른 비용은 사회에 전가해왔다. 이런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조금은 더 불편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이야말로 이러한 정상화 과정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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