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어른 될 줄 몰랐어" 어릴적 친구의 반응은..'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영화 리뷰 [씨네프레소]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18]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가수 루시드 폴의 '국경의 밤'은 노래의 화자를 보러 멀리 찾아온 옛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작고 여린 몸집에 지기 싫어하던 아이들'이었던 두 소년은 어느덧 사회에 진출한 청년이 돼 '앞으로 돌진하고' '전투하듯' 살아야 하는 삶에 치인다. 팍팍한 현실에도 의젓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친구는 아마도 남들 눈엔 수염이 거뭇한 아저씨일 테지만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 내 친구 그대여'.
크리스토퍼 로빈은 푸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푸는 머릿속으로 그렸을 때 반가운 추억이고, 본인이 속한 회사의 경영난은 눈앞에서 시시각각 돌아가는 현재 진행이어서다. 회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요한 결정을 당장 내려야 하는데, 어렸을 때처럼 철없이 구는 푸가 나타나 일상의 질서를 흐트러뜨린다. "이제 더 이상 즐거움만을 쫓으며 살 수 없다"며 크리스토퍼 로빈은 푸를 억지로 숲으로 돌려보낸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은 푸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바람에 날아가는 자료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고 어릴 땐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같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야 하는 업무가 비용 감축을 위한 해고자 선별일지는 몰랐던 것이다. 조금 더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주변의 존경을 받고, 아내와 딸에게 사랑받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그중 어떤 것도 만족할 만큼 성취하지 못했다. 선의로 찾아온 옛 친구에게 버럭 화를 낸 것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들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숲속에서 우당탕 구르는 동안 무장해제된 크리스토퍼 로빈은 푸에게 고백한다. "난 영웅이 아니야, 푸. 난 길을 잃었어."
그 말을 들은 푸는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널 찾았잖아."
15일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7500만달러를 투입한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세계적으로 1억9774만달러(약 2350억원)의 티켓 수입을 올렸다. 흥행 요인으로는 온 가족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최적화한 디즈니 실사 영화의 특성에 더해 방황하는 주인공이 옛 친구와 만나 위로받는 서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겐 그런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때마침 나타나 나를 위로해줄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시 영화는 환상일 뿐이라며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크리스토퍼 로빈이 아닌 푸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메시지가 있다. 이 작품은 삶에 실망한 크리스토퍼 로빈이 어느 날 찾아온 옛 친구 푸를 만나 위로받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저 옛 친구가 보고 싶었던 푸가 크리스토퍼 로빈을 찾아 위로를 전하고 오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길을 잃은 나를 옛 친구가 찾아주는 상황은 내가 의도할 수 없지만, 길을 잃은 옛 친구를 찾아가 위로하겠다고 내가 결심할 순 있다. '그런 친구'가 없을지는 몰라도 '그런 친구'가 될 순 있는 것이다.
원제: Christopher Robin
감독: 마크 포스터
출연: 이완 맥그리거, 헤일리 애트웰, 짐 커밍스(푸·티거 목소리)
평점: 왓챠피디아(3.5/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72%), 팝콘지수(82%)
※2022년 1월 14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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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 지난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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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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