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어른 될 줄 몰랐어" 어릴적 친구의 반응은..'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영화 리뷰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1. 1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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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18]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가수 루시드 폴의 '국경의 밤'은 노래의 화자를 보러 멀리 찾아온 옛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작고 여린 몸집에 지기 싫어하던 아이들'이었던 두 소년은 어느덧 사회에 진출한 청년이 돼 '앞으로 돌진하고' '전투하듯' 살아야 하는 삶에 치인다. 팍팍한 현실에도 의젓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친구는 아마도 남들 눈엔 수염이 거뭇한 아저씨일 테지만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 내 친구 그대여'.

현실에 치여 살던 크리스토퍼 로빈(오른쪽)은 어느 날 옛 친구 푸의 방문에 놀란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2018)는 이처럼 오래된 친구에게서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담은 디즈니 실사 영화다. 기숙학교에 입학하며 푸, 티거, 피글렛, 이요르 등 숲속 친구들과 헤어진 크리스토퍼 로빈(이완 맥그리거)은 이후 결코 동화 같지만은 않은 순간들을 경험한다. 가족 구성원이 사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는 무거운 짐을 떠안는다. 결혼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린 뒤엔 업무에 시달리게 되면서 아내와 아이에게 시간을 내주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옛 친구 푸가 나타난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너무 바빠서 딸과 놀아주지도 못한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 어쩐지 반갑지 않아

크리스토퍼 로빈은 푸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푸는 머릿속으로 그렸을 때 반가운 추억이고, 본인이 속한 회사의 경영난은 눈앞에서 시시각각 돌아가는 현재 진행이어서다. 회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요한 결정을 당장 내려야 하는데, 어렸을 때처럼 철없이 구는 푸가 나타나 일상의 질서를 흐트러뜨린다. "이제 더 이상 즐거움만을 쫓으며 살 수 없다"며 크리스토퍼 로빈은 푸를 억지로 숲으로 돌려보낸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어릴 때처럼 철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푸가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진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러나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져 따라 들어간 숲에서 크리스토퍼 로빈은 자기 속내를 들여다본다. 가방 회사 효율관리 팀장인 그는 정리해고할 팀원들을 선택하느라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팀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 그에겐 큰 부담이다. 푸가 실수로 자신의 서류 가방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자료가 흩어지면서 친구에게 짜증을 내다가 크리스토퍼 로빈은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한다.
사실 숲 속 친구들은 크리스토퍼 로빈을 돕고 싶을 뿐이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난 길을 잃었어"…"내가 널 찾았잖아"

사실 그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은 푸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바람에 날아가는 자료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어른이 될 것이라고 어릴 땐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같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야 하는 업무가 비용 감축을 위한 해고자 선별일지는 몰랐던 것이다. 조금 더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주변의 존경을 받고, 아내와 딸에게 사랑받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그중 어떤 것도 만족할 만큼 성취하지 못했다. 선의로 찾아온 옛 친구에게 버럭 화를 낸 것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들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숲속에서 우당탕 구르는 동안 무장해제된 크리스토퍼 로빈은 푸에게 고백한다. "난 영웅이 아니야, 푸. 난 길을 잃었어."

그 말을 들은 푸는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널 찾았잖아."

"난 영웅이 아니야, 푸. 난 길을 잃었어" "하지만 내가 널 찾았잖아" <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옛 친구의 방문을 담은 서사는 왜 위로를 줄까

15일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7500만달러를 투입한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세계적으로 1억9774만달러(약 2350억원)의 티켓 수입을 올렸다. 흥행 요인으로는 온 가족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최적화한 디즈니 실사 영화의 특성에 더해 방황하는 주인공이 옛 친구와 만나 위로받는 서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길을 한 번씩 잃는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실 대부분의 성인은 어렸을 때 본인이 꿈꿨던 것에 비해 하나씩 부족한 어른이 됐기 마련이다. 직업, 재물, 가정, 사회적 관계에 모두 만족하며 사는 성인은 찾기 쉽지 않다. 일단 우리가 어린 시절 롤모델로 삼는 영웅들은 대다수가 해당 분야에서 0.001%에 해당하는 인물인 데다 설사 그들의 성취에 근접하더라도 또 다른 근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성공 뒤에 가려진 현실적 고민까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널 찾았어"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방문을 담은 영화가 적잖은 격려가 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이 살면서 한 번쯤 '길을 잃었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옛날 모습 그대로의 숲 속 친구들을 보는 것처럼, 숲 속 친구들 역시 중년인 그의 얼굴에서 소년 크리스토퍼 로빈을 발견할 것이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그런 친구'가 없을지라도 '그런 친구'가 될 순 있다

물론 우리에겐 그런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때마침 나타나 나를 위로해줄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시 영화는 환상일 뿐이라며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크리스토퍼 로빈이 아닌 푸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메시지가 있다. 이 작품은 삶에 실망한 크리스토퍼 로빈이 어느 날 찾아온 옛 친구 푸를 만나 위로받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저 옛 친구가 보고 싶었던 푸가 크리스토퍼 로빈을 찾아 위로를 전하고 오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길을 잃은 나를 옛 친구가 찾아주는 상황은 내가 의도할 수 없지만, 길을 잃은 옛 친구를 찾아가 위로하겠다고 내가 결심할 순 있다. '그런 친구'가 없을지는 몰라도 '그런 친구'가 될 순 있는 것이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포스터.<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장르: 어드벤처·가족·드라마·코미디
원제: Christopher Robin
감독: 마크 포스터
출연: 이완 맥그리거, 헤일리 애트웰, 짐 커밍스(푸·티거 목소리)
평점: 왓챠피디아(3.5/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72%), 팝콘지수(82%)
※2022년 1월 14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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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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