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콩'과 '브랜든'의 평행이론..독성 품은 '밈' 정치의 운명은

인현우 입력 2022. 1. 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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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밈, 정치에 관심 끌지만 당파성 강해 
무해함 토대로 유독성의 '입구 마약' 역할 하기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8일 서울 동작구 소재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윤석열 캠프 제공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8일 서울 이마트 이수점에서 '여수 멸치'와 '약콩'을 든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 표면상 내놓은 설명은 방역패스, 밥상물가 점검. 하지만 본인의 인스타그램에는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 #윤석열'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국민의힘 쪽 정치인들이 '멸공 챌린지'라고 이름붙인 놀이에 잇따라 동참했다.

이렇게 '멸콩(멸치+콩)' 밈(유행)이 탄생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멸공' 논란에 빠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우회적으로 지지한 의도가 드러난다. '멸공'이란 표현이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순화한다는 이유로 '멸콩'을 쓴 것이다. 윤 후보는 "멸치와 콩을 많이 먹어 산 것뿐" "해시태그는 내가 단 게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개 사과' 인스타 때도 "재미 위한 계정"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려견 토리 사진을 주로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윤석열 캠프 측이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려 논란이다. 이 사진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윤석열 인스타그램 캡처

윤 후보의 '멸공 챌린지'는 지난해 10월 벌어진 인스타그램 논란과 구도가 비슷하다. 당시는 메시지가 '멸콩'처럼 노골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가 이어지던 시점이었는데,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반려견을 화자로 한 '토리스타그램' 계정에 과일인 사과 사진을 세 차례 올린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상 '사과 요구'를 조롱한 셈이라는 해석이 뒤따랐지만, 윤 후보 본인이든 인스타그램 담당자든 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토리스타그램')이자 돌잔치에서 사과를 잡는 사진(윤석열 본인 계정)일 뿐이었다.

명의 형태도 비슷했다. "재미를 위한 계정으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권성동)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고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것"(윤희석) 등의 발언이 나왔다. '숨은 의도'를 해석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하지 않았고 '토리스타그램'은 폐쇄됐다.


'멸콩' 닮은 미국의 '레츠 고 브랜든'

지난해 11월 16일 트럼프 지지자가 '레츠 고 브랜든' 깃발을 든 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무해함을 가장하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메시지를 '정치화'하는 활동은 미국 정치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언론을 타기 시작한 '레츠 고 브랜든'이다. 표면상 뜻을 한국어 표현으로 바꾸면 '브랜든 이겨라'쯤 되는 이 표현의 속뜻은 우파 진영에서 '조 바이든 엿 먹어라(F**k Joe Biden)'로 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스톡자동차경주협회(NASCAR) 대회 도중 승리 선수 브랜든 브라운과 인터뷰하던 NBC스포츠 기자 켈리 스타바스트가 주변의 외침 소리를 듣고 "레츠 고 브랜든"이라고 해석했는데, 실제로는 "조 바이든 엿 먹어라"라고 외친 것이 유래다.

'레츠 고 브랜든'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사건이지만 일부 보수 진영 네티즌은 "주류 언론이 바이든에 대한 반대를 검열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우파 진영의 집회 등에서 '레츠 고 브랜든'은 흔히 볼 수 있는 문구가 됐다. 보수 공화당의 의원이 의회에서 이 문구를 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로빈 레이코프 언어학 명예 교수는 '레츠 고 브랜든'이 다른 밈들과 달리 표면상으로는 내포된 '모욕성'을 찾을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골적인 욕설이 아니기 때문에 아동과 노인도 참여할 수 있는 '온 가족의 밈'인 셈이다.

이와 동시에 '레츠 고 브랜든'의 이용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탄압받는 집단'이라는 공통성을 형성한다. 레이코프는 "이것(레츠 고 브랜든)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인데 '그들'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일종의 그룹 식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무해한 죄'로 '극우의 상징' 된 불쌍한 개구리

'개구리 페페'의 원작자 맷 퓨리가 2017년 페페의 사망 선고를 내리며 게시한 그림. 트위터 캡처

'온 가족의 밈'이 혐오 표현으로 연결되는 대표 사례는 맷 퓨리의 캐릭터 '개구리 페페'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알트라이트(인터넷 극우파)' 네티즌이 자신들의 대표로 내세웠던 캐릭터다. 애초 '패배한 삶(loserdom)의 상징'인 '착하고 불쌍한 개구리'였던 페페는 알트라이트의 상징이 되면서 미국의 시민단체 반명예훼손연대(ADL)가 혐오의 상징으로 지정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부정적 이미지가 커졌다.

페페가 극우의 상징으로 전유돼 성공하게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원래 캐릭터의 무해함과 범용성 때문이다. 밈 연구자 라이언 밀너와 위트니 필립스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페페의 전유는 주류 정치인과 언론을 놀리기 위한 것이자 동시에 알트라이트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교적 가벼운 밈을 통해 극우의 메시지에 발을 들이게 되면 더 독한 밈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종의 '입구 마약'인 셈이다.

극우 진영의 상징이 된 것과 관계없이 원래 밈 '페페'에는 죄가 없다. 페페는 여전히 알트라이트와 무관한 커뮤니티에서 널리 쓰이며 캐릭터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알트라이트와 그렇지 않은 인터넷 이용자들은 페페의 '소유권'을 얻기 위해 서로 페페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캐릭터의 "오용"에 시달린 원작자 맷 퓨리는 페페를 '죽이는' 작품을 만들었으나 언론에서 짧게 화제가 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레어(희귀) 페페'를 직접 제작, 대체 불가능한 인터넷 자산(NFT) 형태로 판매하면서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서서히 되찾고 있다.


정치 참여 유도하지만 당파성 뚜렷한 '밈'의 세계

주한미국대사관 트위터는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모습을 딴 '샌더스 밈'을 활용한 사진을 공유했다. '샌더스 밈'은 샌더스 의원의 미국 민주당 내 좌파의 불만을 대변하는 성격과 그의 인기를 상징하는 밈으로 해석됐다. 트위터 캡처

인터넷 밈은 이제 정치, 특히 선거와 불가분의 영역에 이른 상태다. 2016년 미국 대선을 비롯해 2017년 영국 총선, 2018년 브라질 대선, 2019년 인도 총선 등에서 정치권은 밈을 적극 생산하고 올라탔다. 올해 대선 역시 각 캠프와 지지자들이 경쟁적으로 그림과 사진 형태의 밈을 생산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영국정치학회 학술지에 기고된 2017년 총선에 '밈'이 미친 영향을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밈'을 즐겨 봤으며 실제 정치 참여가 늘었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자세한 정책보다는 휴리스틱(선택을 결정하는 데 이르는 지름길)을 활용해 정치 참여를 결정한다는 상식을 감안한다면, 밈은 특히 많은 젊은 유권자를 끌어들이는데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9월 "난 '오징어 게임' 속 말일 뿐이었다"고 주장한 곽상도 의원의 아들 발언을 계기로 이를 비웃는 '오십억 게임'이라는 밈이 유행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하지만 밈은 동시에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경향이 짙었다. 논문이 점검한 밈 가운데 특정 정파의 편을 들지 않는 '초당파적' 밈의 비중은 16%에 그쳤으며,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특정 정치인을 '성범죄자'로 비난하는 밈도 존재했다. 감정적이고 당파적일수록 재생산에 성공할 여지가 짙은 경향도 존재했다. 또 대부분의 밈은 정책에 대한 실질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짜 뉴스'로 불리는 거짓된 내용과 연결될 가능성도 높았다. 성공적 '밈'은 사실 여부보다 재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밈'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주류로 끌고 올 때 그에 따르는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 캠프는 '페페' 밈에 대응했다가 극우 진영으로부터 "우리의 존재감을 인정받았다"는 빈축을 사면서 이용만 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유권자들은 정치인이 인위적으로 '밈'을 만드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다. 2015년 클린턴 캠프가 "자금 대출 채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세 가지 이모지(이모티콘)로 답해달라"는 캠페인을 펼쳤다가 "수십 년짜리 고생을 이모티콘 3개로 흐리지 말라"는 부정적 반응을 얻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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