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걸작 남긴 반 고흐조차..생전엔 단 한점만 팔았다니 [아트마켓 사용설명서]

송경은 2022. 1.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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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본 '좋은 그림'의 조건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The Basket of Apples)`(캔버스에 유채, 65×80㎝, 1893).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의 모습을 한 폭에 담아낸 독특한 표현기법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명화를 기준으로 보면 시대상 또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익숙한 풍경)을 담고 있으면서 표현적인 측면에서 독창성과 수월성을 보이는 작품이 좋은 그림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제공=미국 시카고미술관
[아트마켓 사용설명서-3]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한갓 쌓아 두는 것이라면 잘 본다고 할 수 없다. 본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보듯 한다면 칠해진 것 이외는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니 아직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다. 안다는 것은 그림의 형식과 화법은 물론이고 그 정신까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의 묘(妙)란 잘 안다는 데 있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하는 것은 한갓 쌓아 두는 것이 아니다."

이는 조선시대 최고의 서화 수집가인 석농(石農) 김광국이 고려 공민왕부터 조선 김홍도에 이르는 작가 100여 명의 작품을 엮은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을 펴내면서 가깝게 지냈던 문인 저암(著庵) 유한준에게 부탁해 받은 발문의 일부다. 즉,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좋은 그림을 알아볼 수 있는 식견을 갖췄을 때 진정으로 그림을 향유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좋은 그림'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는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떤 이에게는 단순히 심미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 수 있다.

에두아르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Le Dejeuner sur l`herbe)`(캔버스에 유채, 208×264.5㎝, 1863). 당대 남성중심사회의 추악한 면을 풍자했다. /사진 제공=프랑스 오르세미술관
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명화들이 가진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좋은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한 암묵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좋은 그림에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사회의 시대상을 담고 있거나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지만 보편적인 감정이나 익숙한 풍경을 담고 있어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 기법의 측면에서 고도의 표현력과 독창성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그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일례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는 당시로서는 너무 파격적인 장면 때문에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그만큼 적나라하게 시대상을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림에는 풀밭에 잘 차려입은 두 명의 남성 옆에 나체의 한 여인이 함께 앉아 있고, 이 여성은 관객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배경에는 벌거벗은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한다. 남성 지식인을 대낮에 매춘부와 놀아나는 작자로 풍자함으로써 당대 여성을 바라보는 부도덕한 남성들을 고발한 것이다.

마네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 도전장을 내민 현대적 표현 방식으로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인물은 양감 없이 종이 인형처럼 편평하게 표현되고, 화면에서는 어디서 조명이 비추는지 알 수 없다. 전통 회화의 광원 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또 당시 초상화는 화려한 장식 요소를 주변에 많이 배치해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마네는 인물화의 3차원적 배경 재현도 과감히 생략했다. 공간적 배경이 없는 '피리 부는 소년'(1866)은 마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인물 사진 같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The Fifer)`(캔버스에 유채, 160×67㎝, 1866). 19세기 현대적인 삶의 모습을 담았던 마네는 3차원적 배경 재현을 생략한 표현기법으로 회화의 대상이 오롯이 2차원의 캔버스 위에 존재하도록 했다. 실물 크기에 가까운 이 거대한 인물화 속 소년은 종이인형 같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인물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제공=프랑스 오르세미술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그림은 일상 속 평범한 소재를 독창적으로 표현해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렸던 기존 방식과 달리 세잔은 대상을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대상의 모든 면면을 한 폭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전체적인 모습이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는 실제 눈으로 본 것에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이다.

세잔의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1893)이 대표적이다. 그림의 오른편은 사과가 놓여 있는 상을 옆에서 본 것처럼 보이지만, 왼편은 상을 바로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상의 모서리가 보이지 않는다. 바구니와 병은 기이하게 기울어져 있고 원근법도 맞지 않는다. 이처럼 사물의 본질에 집중한 세잔은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 등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했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같은 20세기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절규'(1893)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 작품은 작가가 시대상을 포착해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절망적인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공포, 절망감, 불안감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경우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뭉크는 5세 때 어머니를 결핵으로 잃었고, 13세가 되던 해에는 폐병을 앓던 누나가 세상을 떠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그의 작품에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내재하게 됐다.

왼쪽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The Scream)`(판지 위에 유채·템페라·파스텔·크레용, 73.5×91㎝, 1893). 오른쪽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self-portrait)`(캔버스에 유채, 65×54㎝, 1889). 이들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보편적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제공=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프랑스 오르세미술관
한 가지 좋은 그림을 고르고자 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명화들 가운데 상당수는 당대에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괄시 당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비운의 예술가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생전에 단 한 점의 작품만을 판매했을 정도로 당대에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수했던 그의 열정이 서린 작품들은 현시대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고흐는 물감을 희석하지 않은 채 걸죽하게 칠한 독특한 표현으로 2차원적 회화를 3차원적 조형물처럼 나타내는 새로운 회화 기법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튜브에서 물감을 짜서 직접 화폭에 바르는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그의 '해바라기' 작품들은 붓 터치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눈앞에 해바라기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주기도 한다. 특히 내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 반영된 탈인상주의적 표현은 '별이 빛나는 밤'(1889)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한편 18세기 프로이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미적 판단은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같은 미적 판단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아름다움은 특정한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고흐가 정신병을 앓을 당시 그린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캔버스에 유채, 73.9×92.1㎝, 1889). 일렁이는 듯 보이는 이 장면에는 작가의 내적 감정이 반영돼 있다. /사진 제공=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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