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서 마주친 20여년 전 순직 기사.. 비극은 '도돌이표'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2. 1. 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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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소방관의 순직
10년 동안 소방관 순직자 49명
노조선 "경험있는 책임자 배치를"
매뉴얼 개정·로봇 도입 등 의견도
지난 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순직한 경기 송탄소방서 119구조대 고(故)이형석 소방경, 박수동 소방장, 조우찬 소방교의 안장식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던 지난 10일. 참배하는 이가 드문 국립대전현충원은 이따금 날아가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로 적막감만 더했다. 현충원 정문으로 들어와 10여분 걸으니 순직한 소방 공무원들을 위해 조성된 묘역이 저 앞에 보였다.

지난 5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소재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고(故) 이형석 소방경(50)·박수동 소방장(31)·조우찬 소방교(25)는 앞서 세상을 떠난 동료와 함께 이곳에 잠들었다.

◆서울·경기·경남·광주 등 순직 지역은 전국 곳곳

고인이 안장된 자리에 다가가니 임시로 세운 것으로 보이는 팻말과 이흥교 소방청장 등이 보낸 조화(弔花)가 눈에 띄었다. 고인을 그리워하는 동료의 슬픔이 담긴 듯 국화는 노랗게 바래 있었다. 비석은 유족 이름과 고인의 계급 등이 새겨진 뒤 놓일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세워진 다른 비석에는 고인의 출생지와 순직한 지역이 새겨졌다. 1990년대 들어 놓인 비석을 자세히 살펴보니 서울과 경기 남양주·성남·용인, 경남 하동, 경북 김천·문경·포항, 광주, 충남 당진, 강원 속초 등 순직 지역은 전국 곳곳이었다. 순직 지역과 이름 등은 다르지만, 생전에 가족이나 동료 등 사랑하는 이들과 찍은 사진은 평생 그 추억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비석 옆에 자리 잡았다. 한 비석 앞에는 우유가 놓였는데, 세상에 남은 이와 고인을 연결하는 추억이라 짐작된다.
순직한 소방 공무원들을 위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조성된 묘역.
◆반복된 소방관의 순직… 현장에서는 ‘철저한 대비책’ 촉구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10년간 소방관 49명이 화재 진압이나 구조·구급 활동 중 순직했다.

지난해 6월 경기 이천의 쿠팡 물류센터 화재 진압에 투입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도 이곳에 안장됐다. 경기 광주소방서 소속인 고인은 당시 인명 수색 등을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가 실종됐으며, 48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2019년에는 경기 안성의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안성소방서 소속 석원호 소방위가 인명 구조 중 예기치 못한 폭발로 순직했고, 대전현충원이 지난해 11월 ‘이달의 인물’로 선정한 김형성 소방위는 2012년 경기 고양의 문구류 제조공장 화재 진압 중 위급한 상황에서 후배 소방관들을 먼저 대피시킨 뒤 빠져나오지 못했었다.

거듭된 순직에 철저한 대책을 촉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거세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0일 정부세종2청사 소방청 앞에서 평택 냉동창고 소방관 순직 관련 추모제 및 소방청 규탄집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 소방청 앞에서 평택 화재사고 순직 소방관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노조 측은 “이번 사고는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 빚은 대참사”라며 “최소 20년 이상 경험이 있는 책임자를 배치하고 현장 지휘체계를
개편하라”고 요구했다.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조도 지난 7일 평택 화재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 화재와 매우 흡사한 인명사고가 났다”며 “지휘부는 유족에게 일일이 사죄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성명을 냈다.

순직 사고를 막는 대안으로 현장 상황에 맞게 진압 매뉴얼을 개정하고 ‘착용형 로봇’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대 변화에 맞는 소방당국의 체계적인 대응으로 국민과 소방관의 안전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평택시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엄수된 평택 신축 공사장 화재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 영결식에서 유족이 오열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현충원에 전시된 1998년 순직 관련 기사… 20여년 흘렀지만 도돌이표
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에는 98년 서울 금천구 화재 현장에서 건물 붕괴로 순직한 뒤 안장된 소방관 2명의 기사가 전시됐다. 비극의 반복은 없어야 한다는 게 전시 취지라는데,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현장의 호소이다.
사진=뉴시스
현충문을 나서는 동안 지난 7일 평택 제일장례식장에서 봤던 순직 소방관의 동료가 떠올랐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혔고, 일부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을 감쌌다. 같은날 순직 소방관의 근무지인 송탄소방서 앞에는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는데, 그날따라 햇빛은 유난히 밝았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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