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모녀의 모전여전 축구사랑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22. 1. 15. 14:00 수정 2022. 1. 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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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 김미순(오른쪽) 박단비 씨 모녀가 함께 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엄마와 딸이 한 축구팀에서 공을 찬다. 요즘 모 방송에서 유명 여성 연예인들이 축구를 하는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함께 축구를 하고 있다. 모녀는 ‘골때녀’ 영향으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현상에 기뻐하지만 함께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기에 더 행복하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에서 함께 공을 차며 모녀의 정을 쌓고 있는 김미순(58) 박단비 씨(32) 얘기다.

엄마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가 식지 않은 2003년 축구를 시작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잠시 축구를 한 아들(34) 때문에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일월드컵 때 열렬한 팬이 됐다.

“아들을 데리고 축구장을 오갈 때 한일월드컵이 열렸어요. 그 때 호프집에 모여서, 혹은 길거리로 나가 응원했죠. 축구 하나로 온 국민이 열광하며 행복했어요. 그리고 1년여 뒤 서대문구청 소식지에 여성축구단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의 김미순(오른쪽) 박단비 씨 모녀가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엄마 김 씨는 2003년부터, 딸 박 씨는 2016년부터 축구를 시작해 같은 팀에서 매주 3회 공을 차며 모녀의 정을 쌓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어떤 힘에 끌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축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대부분 처음이라 개인차가 없었고 각종 패스와 트래핑, 드리블 등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재밌었다. 넓은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맛도 새로웠다. 공을 차며 한껏 땀을 흘리고 나면 온갖 스트레스도 날아갔다. 김 씨는 “감독님이 말하는 축구 용어가 생소해 축구 교본을 사서 공부했고, 초반에는 훈련 일지까지 쓰면서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을 하고서야 축구를 조금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엔 축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죠. 공을 아무 데나 차고 승부욕만 넘쳐 몸싸움만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패스의 길이 보이더라고요. 패스를 잘 했을 때 즐거움도 알고, 골 어시스트하는 기쁨도 느끼기 시작했어요.”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의 김미순(왼쪽) 박단비 씨 모녀가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공을 뺏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엄마 김 씨는 2003년부터, 딸 박 씨는 2016년부터 축구를 시작해 같은 팀에서 매주 3회 공을 차며 모녀의 정을 쌓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축구 경기도 많이 봤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박지성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다. 요즘은 토트넘 손흥민에 빠져 있다. 스타 선수들의 인상적인 플레이를 따라 해보기도 했다. 김 씨는 틈나는 대로 탁구도 친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돼 공공시설인 축구장과 실내 탁구장을 활용하지 못할 땐 야외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집 근처 안산을 돌며 체력을 관리했다.

딸은 직접 공을 차며 새벽에 박지성 경기까지 꼬박꼬박 지켜보는 엄마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축구를 시작한지 13년이 지나서 딸도 축구에 발을 들였다. 엄마를 지켜보면서도 축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딸은 2016년 어느 날 친구들을 축구단에 소개시켜주기 위해 나갔다가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의 김미순 씨가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뜬 공을 상대에게 차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엄마가 축구를 한다는 소문에 친구들도 하고 싶어 해 소개시켜주러 나갔죠. 감독님이 저도 한번 뛰어 보라고 했어요. 엄마와 2대1 패스를 했는데 잘 맞았어요. 게다가 연습경기에서 골도 넣었어요. 그 때 ‘축구가 이렇게 재밌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공을 차고 있습니다.”

박 씨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단거리 달리기와 수영, 속칭 심박수를 올려주는 운동이 좋았다. 커 가면서 피트니스센터에서 근육을 키우는 재미에도 빠졌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단국대 생활체육학과에 들어갔다. 축구를 접한 박 씨도 패스 등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축구는 누가 더 잘할까. 박 씨는 “수비형미드필더로 포지션이 겹치는데 엄마가 주전이다. 난 우리 팀이 몇 골을 넣어 앞설 때나 들어간다”며 웃었다. 그는 “축구는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노련하게 플레이한다. 난 성급하게 플레이하다 실수를 자주 한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엄마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핀잔을 줘 부담이다. 그래서 엄마를 목표로 틈날 때 운동장도 달리고 있다”고 했다. 2018년 9월부터 서대문구체육회에서 일하는 박 씨는 엄마를 롤 모델 삼아 시간 날 때마다 근육운동으로 체력도 키우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의 박단비 씨가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뜬 공을 처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전 경로당 등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 운동을 지도하고 있어요. 제가 지도하는 분들 평균 연령이 80세인데 평소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아주 건강해요. 근력과 유연성도 뛰어나요. 플랭크와 스쿼트도 거뜬히 하십니다. 우리 엄마도 꾸준히 운동하시니까 80세 넘어서도 건강하고 젊게 사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모녀는 매주 3회(월, 수, 금요일) 함께 공을 차고 있다.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은 전국 대회에서 자주 우승하는 등 강호로 통한다. 박 씨는 2019년 열린 제6회 만덕배 제주전국여성축구대회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뛴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는데 제주방송에서 중계까지 한 대회여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우승까지 했다”며 웃었다. 김 씨는 “언제인지는 기억이 않지만 강원도 횡성에서 우리팀이 골을 많이 터뜨려 우승한 게 기억난다. 1골당 1만 원 씩 걷어 회식을 했다”고 회상했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이 2019년 제6회 만덕배 제주전국여성축구대회에서 우승할 때 모습.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김미순 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단비 씨. 사진제공 박단비 씨.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은 매년 4~5개 대회에 출전하는데 코로나 19 이후엔 제대로 훈련도 못하고 대회도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두 모녀는 축구훈련을 못할 땐 집 앞 공터에서 드리블과 패스를 함께하는 등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큼 축구가 좋다.

김 씨는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에서 최고령이다. 그는 “이 나이에 지금도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스트레스도 날려주고 건강도 지켜주고…. 팀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힘닿을 때까지 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축구가 거칠기 때문에 100세 시대를 맞아 운동 플랜B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탁구와 배드민턴, 등산도 병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최근 ‘야구 메카’가 된 서울 고척돔야구장에서 분식코너를 운영하고 있어 야구도 자주 접하지만 축구만 한다. “축구가 더 좋기도 하지만 야구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했다.

박 씨는 직접 뛰는 축구 경기에 빠져 있다. “기술을 활용해 플레이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랄까? 특기 골을 넣었을 때, 우승했을 때는 날아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여성축구단의 김미순(왼쪽) 박단비 씨 모녀가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서로 공을 차지 하기 위해 질주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골때녀’는 보고 있을까. 엄마는 “잠깐씩 봤는데 정말 축구를 잘하는 것 같다. 특히 국악 하는 송소희는 ‘여자 메시’ 같았다”고 말했다. 딸은 “경기는 많이 못 봤지만 골때녀 보고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다. 많은 여자들이 축구하며 인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에 서대문구청여성축구단이 다시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엄마는 “딸과 함께 경기하면서 합작골을 넣고 싶다”고 했다. 딸은 “축구를 평생하며 엄마와 우리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 축구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공을 차는 모녀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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