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노동자 18만명 중 여성 6%, 채용차별 말고 설명되나

한겨레 2022. 1. 15.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한겨레S]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③ 릴레이 연재
열에 아홉 남성 노동자에 작업환경도 남성 맞춤형
금속노조 '성소수자도 혜택' 모범단협안 개정
2020년 3월 ‘3시 스톱(STOP)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릴레이 연재는 <한겨레>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함께합니다.

☞뉴스레터 공짜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한국 사회에 성별에 따른 차별이 있다, 라고 말할 때 차별은 어느 공간에서 어떤 모양으로 발생하는가. 가장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일상적으로 차별에 노출되는 장소는 집과 일터이다. 그런데 집과 일터에서의 차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집에서의 차별을 쉽게 만드는 근거를 일터에서의 차별이 제공한다. 제조업, 대공장, 철도, 이런 사업장들은 남성 사업장으로 분류되고 주로 정규직이다. 식당, 청소, 요양서비스, 렌탈가전 케어, 이런 일들은 여성의 일로 분류되고 모두 비정규직 사업장이다.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을 구분해서 남성에게 안정적인 고임금을 주고 여성에게 불안정한 저임금을 준다.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그나마도 고용이 불안정하여 언제든 수입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여성들의 힘이 남성에 비해 취약하다. 경제적인 주도권을 남성이 쥘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밀어주는 것이다. 1997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비정규직이 확대될 때, 그때까지 정규직이던 식당, 청소, 서비스업 등의 여성의 일로 구분되는 업종이 먼저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법제도가 먼저 여성을 차별하여 비정규직으로 내몬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법을 만드는 일을 하는 국회라는 일터에 남성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채용부터 여성 향한 차별의 벽

18만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소속 사업장 노동 현장에서 수행되는 일 중 여성이 못 하는 일은 단 한 공정도 없다. 그런데 여성은 6%밖에 없다. 채용에서부터 차별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좁은 취업 문을 운 좋게 통과해서 입사하면 생산 현장의 기계, 설비, 공구, 모든 것이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 운전하던 자동차의 키를 받아 내가 운전할 때 먼저 시트와 미러를 내 몸에 맞게 조정해야 편하게 운전할 수 있다. 그 조정을 하지 않고 운전을 하면 매우 불편하고 위험하다. 이러한 불편과 위험을 날마다 겪으며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이런 불편함이 여성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산업재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연구된 바 없고, 통계도 없다. 소수의 여성이 있는 사업장들은 여성 화장실이 부족하거나 멀리 있는 경우가 있다.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촘촘히 짜인 노동 시간은 너무 멀리 있는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을 허용하지 않아 방광염, 신우염에 걸린다. 화장실 다녀올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 노동자에게 밥 먹는 시간은 허용될까? 노동조합 만들어서 이제는 시간에 쫓겨 허덕이며 일하지 않아서 화장실도 편하게 다녀오고 허겁지겁 밥 먹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 여성 조합원이 있었다.

성별에 따른 차별은 옳지 않으니 성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은 일터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남녀 동수 채용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여성의 몸에 맞는 라인을 설계하라고 요구하고, 화장실을 늘려달라고 교섭해서 여성의 몸에도 편안한 현장을 만들기 유리하다. 국회라는 일터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남성의 일로 분류된다. 여성이라고 법을 만드는 일을 못 할 이유가 없다. 남녀 동수의 국회의원이 선출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절반이 여성인데 국회의원의 절반이 여성인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국회의 수준을 보면,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조차 외면한 세월이 15년이다. 한숨이 나온다. 날마다 날마다 차별에 노출되어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원들은 차별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급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2020년 3월 ‘3시 스톱(STOP)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회가 소외된 사람들에게 절박한 차별금지법을 깔고 앉아 한가한 사이, 그러나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위한 우리의 할 바를 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는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온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지난해 12월7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채택한 모범단협안 ‘제8장 인권’의 첫번째 문장이다.

2021년 3월 자신이 선택한 성정체성을 그녀의 직장인 군대에서 인정하지 않아 변희수 하사가 죽었다.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 나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이 있는 노동현장은 평온한 환경이 아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보며 마음이 아팠다. 마침 전국금속노동조합은 모범단협안 개정을 논의 중이었다. 그동안 ‘남녀평등과 모성보호’로 이름 붙여져 있던 장을 ‘여성노동권’으로 바꾸고, 성별, 종교, 장애, 나이, 학력, 출신 국가,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명문화하는 ‘인권’ 장을 신설하기로 논의하던 참이었다. 우리 노동조합이, 내가 늦었다는 반성을 했다. 일터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내가 할 바를 하지 않아 변희수 하사가 죽은 듯이 느껴져 미안했다.

배제 않는 인권규정 가능하다

인권 장에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넣은 이후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우리 노동조합 조합원 중 성소수자가 있다면 이 단협으로 어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할까? 그동안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배제되어 보장받지 못한 복지는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배우자와 가족의 개념을 재정비했다. 특별휴가, 가족돌봄 휴직 및 휴가, 가족돌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의료비 보조 등의 조항에서 ‘배우자는 법률상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및 동거인을 포함하며, 가족은 법률상 혼인으로 성립된 가족 형태에 국한하지 않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고려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함한다’고 명문화했다. 예를 들어 본인과 배우자의 부모가 사망한 경우 특별휴가를 일주일 준다고 한다면 그동안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배우자의 부모가 사망했을 때 받지 못하던 특별휴가를 이제는 받을 수 있도록 모범단협안을 개정한 것이다.

모범단협안의 개정으로 당장 전국금속노동조합 18만 조합원들이 소속된 사업장의 단협이 다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신규 사업장들이 회사에 요구하는 모범단협안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노조의 기준이다. 개정된 모범단협안이 현실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모든 노동자가 평온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누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권수정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그랜저와 쏘나타가 만들어지면 검사를 하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2003년 회사에서 해고됐고, 2020년부터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