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심판받는 박정자를 연기한다는 건.."평범하나 하찮지 않게"

한겨레 2022. 1.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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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유선애의 배우는 사람][한겨레S] 유선애의 배우는 사람 | 배우 김신록
한예종·뉴욕 극단 등 거쳐..넷플 드라마 '지옥' 박정자 역 존재감
"빨간 사과 안에 하얀 속살,까만 씨 있다는 걸 인지하는 인물로"
사진가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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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지만 하찮거나 품위가 없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 김신록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 <지옥>의 ‘박정자’라는 인물에 대해 지나가듯 한 말이 내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 대답은 곧 ‘노점상을 운영하는 미혼모 박정자가 죽음을 대면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파문을 만들고 모두를 놀라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기도 했다. 해마다 유난히 인상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누군가 궁금해지고 더 알고 싶어지는 건 천재적인 재능도, 기술도 아닌 오래 갈고닦은 어떤 태도가 엿보일 때다. 20대와 30대 내내 학교와 무대 위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행했던 그와 배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입체형임을 잊지 않는 것, 그러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조각일 뿐임을 인지하는 것, 조각 너머를 가늠하고 헤아리는 태도가 대화 중간중간 빛을 발했다.

김신록이 걸어온 길

서울대 지리학과 재학 당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다 2004년 데뷔했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 과정을 공부하며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뉴욕의 한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고 익혔다. 드라마 <괴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지옥>, <어느 날> 등을 통해 배우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직관과 경험이 가리킨 길 따라

―20, 30대 전부를 학교 안과 밖에서 배움을 거듭했습니다. 이력 면에서 ‘배우는 사람’이라는 인터뷰 칼럼명과 가장 근접한 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알고 싶은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궁금한 게 늘 있었고, 또 알아가는 과정을 기질적으로 좋아하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김신록 배우의 배움은 단지 ‘스펙’으로 읽히기보다는 정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의 분투처럼 느껴졌습니다. 긴 배움의 여정 속에서 잃고 얻은 것이 있지요?

“잃은 것은 젊음?(웃음) 얻은 것이 있다면 모르는 것 앞에 서고 싶은 마음,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죠. 모르는 것 앞에 나를 두는 것은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그 앞으로 가야만 다른 것을 알 수 있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덕분에 스스로 한계를 경험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면 모르는 것 앞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주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나요? 오랜 시간 공부하는 것에 대한 자기 염려 혹은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느닷없이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에 대한 부모님의 만류도 있었을 것 같고요.

“부모님께서는 ‘그래도 되겠냐, 네가 하고 싶은 거면 하는데 그래도’ 정도의 의례적인 만류를 하셨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제도권 안에서 교육받고 또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가 강제하는 경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어요. 그래서 때마다 소소한 고민들을 했지만 의외로 직관을 믿고 움직였던 것 같아요. 고민이나 계산이 아닌 직관에 힘을 싣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한데요. 선택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나 기대, 계획들이 다 무용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면서 직관을 더 믿게 됐어요. 결과에 대해 미리 계산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더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뿐이라고요. 나는 지금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인 거죠.”

―지난해 오티티 시리즈물 <지옥>으로 ‘<지옥>의 최대 수혜자’라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맡았던 ‘박정자’라는 역할에 대해 “평범한 사람이지만 하찮거나 품위가 없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내내 좋더라고요. 한 인간이 품위를 갖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여백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품위가 있거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표면적으로 도드라진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사과는 빨갛죠. 그 안은 하얗고요. 또 씨는 까맣잖아요. 사과가 빨갛다는 것이 거짓은 아니지만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혹은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아는 것이 품위 같아요. 박정자라는 인물 역시 겉으로 봤을 때는 가난, 미혼모 같은 단어들로 묘사되지만 그런 말들로는 담기지 않는 어떤 오롯함을 지니고, 그 오롯함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타인과 세계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요.”

―품위라는 것은 대사나 행동이라기보다는 풍겨지는 분위기이기도 하잖아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은 배우에게 매번 새로운 고민을 안겨줄 것 같습니다.

“(눈앞에 놓인 컵을 쥐며) 어떤 인물은 단지 목을 축이기 위한 목적 아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커피를 마시잖아요. 한데 목을 축이는 것 외에도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는 향과 온도, 눈앞에 마주 앉은 사람 등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죠. 누군가는 부수적이라 할 요소에 대해 어떻게, 얼마만큼 할애할 것인가 가늠하는 것이 인물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돼요. 품위 있는 사람의 경우 어떤 것을 감각하고, 관계 맺는 것에 좀 더 열린 태도를 취할 것 같아요. 효율적이고 목적적인 행위만 우선하기보다는.”

사진가 이규원

미숙했던 30대 시절 “연기 재미없네”

―본인 삶에서 비효율적이고 무목적적인 행위는 언제 가장 크게 발현된다고 보나요?

“제 경우에는 타인과 관계를 깊이 가져갈 때 사고 이외 감각, 직관, 감정 같은 영역이 열리는 것 같아요. 저는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도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인간 됐다, 더 고른 인간이 됐다 싶어요. 또 한편으로는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니어도 가능할 것 같고요. 동물이나 사물 혹은 아침 햇빛이나 음악 등 무형의 것일 수 있죠. 어떤 대상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마음을 쓰고 주는 일 자체가 인간이 지닌 다른 부분을 길러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럴 때 효율이나 목적과는 조금 다른 것들에 근거해서 움직일 여지가 생기는 것 같고요. ‘마이크로해비타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미생물의 서식에 적합한 아주 작은 거주지라는 뜻이래요. 거주지라는 말이 공적이고 장소적인 느낌이라면 마이크로해비타트는 긴밀하게 관계 맺는 대상 자체, 혹은 그 관계 자체가 나의 마음의 처소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작은 관계의 처소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작은 마음의 처소에 귀를 기울인다면 효율이나 목적과는 다른 삶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 중간중간 어딘가 초연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웃음) 소위 말하는 세속적 욕망이 들 때는 없었나요? 배우로서 나를 좀 알려야겠다 혹은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식의 욕망이나 인정 욕구 같은 것들이요.

“있었죠.(웃음) 2015년 무렵 뉴욕에서 돌아왔을 때 연기와 연극에 대해 뭔가 좀 알 것도 같고, 또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마침 국립극단이 처음으로 시즌 단원을 대대적으로 모집해 입단을 했는데요. 그 안에서 작품을 올릴 때마다 오디션이 있었어요. 좋은 작품을 하고 싶고, 좋은 역할을 연기하고 싶으니까 그 안에서 자꾸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고 또 경쟁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 과정을 성숙하게 해낸 배우들이 있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열등감과 질투와 욕망으로.(웃음) 그 시간을 견디면서 처음으로 연기가 재미없다고 느꼈어요. 차마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참고 참다 어느 날 툭 ‘연기 재미없네’ 하게 되더라고요. 시스템 안에서 흔들리지 않기에는 내가 아직 미숙하다, 그리고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가 이미 서른다섯살이었는데 그렇게 뒤늦게.(웃음)”

―시스템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저 역시 단숨에 놓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차마 못 놓는 거죠. 마음은 멀어졌지만 미련이 남아서 오디션을 또 보기도 했어요. 소위 말하는 ‘객관적으로 이게 더 낫지 않냐’고 하는 것을 좇으려는 행동들이었는데 그런 이유들로 인한 행동에는 힘이 없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고요. 그렇게 시스템에서 비켜나서 다양한 연기를 시도하고 실험할 수 있었어요. 이탈이 제게 남긴 것들이 있고요.”

―과거 연극배우로도 활동하신 아버지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죠.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아버지가 연극을 보여주며 ‘연기를 배우라는 게 아니라 인생을 배우라는 말’을 하셨다고요. 말씀대로 인생이 배워지던가요?

“아버지가 평소에 명언 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스스로 뿌듯해하시며.(웃음) 연기를 하면서 인생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배우고 익힌 건 ‘하는 힘’이죠. 공연이 8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조명 켜지면 배우는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해요. 어떤 날은 스스로 준비가 안 된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우울하고 무력하고, 몸 상태가 안 좋거나 피곤할 때가 있고요. 그러다 어떤 날엔 너무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8시가 되면 암전 중에 등장해 자기 몫을 해내야 하는 거예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 전 존재를 바쳐서 그 일을 해내야 해요. 연기를 하는 삶이 준 이런 경험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힘이에요.”

“관객 평가, 이젠 그대로 받아들여요”

―어떤 상황에서든 ‘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알게 하고 동시에 한계치를 넓힌다고 들립니다.

“연기는 자신을 사용하는 일이니까요. 자신을 내던지는 일로부터 힘을 기르는 거죠. 요즘 연기 워크숍에서는 주로 영감을 나누고, 직접 몸을 움직이며 어떤 것을 해보는데요. 그렇게 몸으로 해보는 순간에 나의 ‘캐파’(capacity, 수용 능력)를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는지 알게 돼요. 인간, 혹은 모든 생명이 지닌 각자의 수용 능력은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열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계속 해보는 거죠. 어느 만큼 열릴 수 있는가 확인하고 훈련을 통해 넓혀가는 거예요.”

―동시에 핑계 댈 수 없는 삶이기도 하죠. 무대에 올라 연기하기 전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양해를 구할 수도 없는 거고요. 배우라는 직업은 인생에서 결코 핑계 댈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것을 좀 더 자주 인지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연기를 하는 일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 혹은 나를 내던지는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어요. 한데 지금은 흐르는 강물 위에 꽃잎 하나 띄우는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3일 동안 감기 몸살을 앓았다면 그 몸으로, 오늘의 나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이렇게 생각이 변한 건 예전에는 내가 에이(A)라고 만들어놓은 것에 대해 관객이 에이라고 받아들인다고 믿었기 때문 같아요. 그래서 다른 해석이 나오면 내가 연기를 잘못해서 관객들이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무리 에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해도 관객은 에이가 아니라 비(B), 심지어 ‘가나다’로도 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연기란 관객 한명 한명 각자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그날 그 시간 그렇게 만나는 것이라고요.”

―그 과정에서 때때로 혹독한 평가를 듣는 날도 있죠.

“평가에 있어 초연한 건 아닌데요. 어떤 평가나 말들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것들이 존재하잖아요. 누구나 그렇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를 제대로 몰라줘서 답답하다 유의 마음이 들 수는 있죠. 재미있는 건 누군가로부터 혹독한 평을 들은 날마저도 그날의 관객들은 다 다르게 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배우가 아무렇게나 연기해도 되는가. 그건 아니고요. 그날 해야 할 연기의 축이나 궤도에 따라 충실하다는 전제하에 지금 일어나는 순간의 상황을 수용하면서 물줄기가 흘러가도록 두는 거죠. 그러다 물줄기가 옆으로 비켜나 잘못 흐르기도 하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어? 잘못 흘러갔네’라고도 하고요. 그러다 또 어떤 날은 ‘오늘 물줄기 특히 좋았는데’ 하기도 하니까.(웃음)”

드라마 <지옥>에서 박정자를 연기한 김신록. 넷플릭스 제공

여백을 여백 그대로 두기

―최근 2, 3년 사이 역할들을 되짚어 보면 성취욕과 명예욕을 지닌 작가 ‘스카르파’(연극 <비평가>),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겸비한 강력계 형사 ‘오지화’(드라마 <괴물>), 욕망에 충실한 승률 100% 검사 ‘안태희’(드라마 <어느 날>) 등 주체적인 인물로서 살아왔습니다. 인물에게 주체성이 있다고 할 때 그에게는 무엇이 있다고 보는지요?

“무엇이 나라고 스스로 정의하거나 분류할 틈 없이 삶의 순간순간에 내린 선택과 결정들로 만들어지는 게 나일 텐데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과 결정을 해왔다고 믿는 이가 주체적인 인물이라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저를 둘러싸고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면밀히 알고, 선택하고, 피드백 하는 과정을 거치길 격렬하게 원하거든요. (손바닥을 펼치고 이내 주먹을 쥐며) 제 손 안에 다 쥐려고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든 게 빠져나가죠. 더 알고 싶지만 모르는 것이 늘 존재하고, 피드백이 제대로 안 되고, 된다 해도 충분치 않고요. 그렇다고 욕심껏 통제하고 단속한다고 나서면 충분해지느냐, 아니죠. 내가 놓치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더 움켜쥐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주체적인 인물로 보일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해온 인물들 역시 자신 앞에 놓인 것을 어떻게든 알고, 선택하고,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고요.”

―움켜쥐고 또 놓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의지가 발현되는 것일 텐데요. 자기 의지로 행했다면 결과를 떠나 그 사람은 일정 부분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가지고자 함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인식한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그 삶의 주인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처음 나눴던 품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스스로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인식하고 내가 주체로서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겠다고 나서는 행동들은 그다지 멋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보다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고 상대방의 모르는 부분, 내가 알 수 없는 면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품위 같아요. 여백은 여백으로 두는 것, 우리가 서로에게 보는 것은 조각이고, 조각 너머에 거대한 빙산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는 것이요.”

1990년대에 태어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2021)을 펴냈다. 매 순간 새롭게 배우고 깨치는 배우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맡은 배역을 깊이 탐구하고 탐험해온 중견 여성 배우들에게 ‘배우는 삶’에 대해 묻고,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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