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향해가는 기업들, 노동권도 챙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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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코로나19를 통해 자연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상적으로 학습하고 있기도 하다(어쩌면 인간 속에 자연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무감각은 여전하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늦추거나 친환경 자동차의 보급 속도를 줄이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노동의 역할이 (실직에 대한) 보상과 (환경보전에 대한) 지지를 교환하는 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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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코로나19를 통해 자연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상적으로 학습하고 있기도 하다(어쩌면 인간 속에 자연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무감각은 여전하다. 대선이라는 유력한 공론장에서조차 기후위기는 강 건너 불이 되고 있다(우리는 그런 식으로 대선을 소비한다. 노동도 환경도 미래까지도).
탄소중립을 둘러싸고 세상 조용한 것 같아도 노동현장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고 가솔린 엔진 차가 전기차로 바뀌면서 고용불안은 발등의 불로 다가온다. 실업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건 새삼스러운 발견도 뭐도 아니다.
그들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지 않는 한 노동조합이 고용에 매달리는 걸 비난할 수는 없다. 고용보장 없는 에너지 전환은 순순히 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말보다 더 지독하다. 그렇다고 고용보장이 탄소중립의 실현을 방해하는 데까지 가버리면 역주행이 되고 만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늦추거나 친환경 자동차의 보급 속도를 줄이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말마따나 “죽은 행성에선 고용도 없다”.
고용이란 다양한 정책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종합예술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직이 불편하지만 당면해야 할 진실이라면 사업장 내에서, 또는 사업장 간 인력 재배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불가피하다. 전직 훈련이나 재취업 지원 서비스의 제공, 그리고 실직 기간의 생계와 주거 문제 해결 등도 익숙한 레퍼토리다.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잃는 일자리와 만들어지는 일자리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시간·장소·숙련 등)까지 해소되는 건 아니다. 일자리의 질을 확보하는 건 또 다른 과제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고용보장이 중요하다고 해서 “고용만 보장된다면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하는 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의 역할이 (실직에 대한) 보상과 (환경보전에 대한) 지지를 교환하는 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현상 유지적인 방식으로는 노동과 환경 사이의 딜레마를 풀 수 없다. 고용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둘러싼 사회의 권력관계를 바꿔야 한다. 이렇게 나설 때 노동과 환경은 비로소 의제를 공유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다.
권력관계를 바꿔야 고용보장도, 환경단체와 화해도 가능해
산업구조 개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전력산업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술관료적으로, 때로는 밀실에서 권위적으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할 수는 없을까. 한국전력을 축으로 에너지 산업의 구조를 재정립하고 발전 공기업의 통합을 추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전력 수급을 탄력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대규모 전원이라는 집중형의 전력 구조와 재생에너지라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결합하면 어떨까.
기후위기 대응은 정부나 사용자가 노동자들과 벌이는 전쟁이 아니다. 노동조합과 ‘맞서’ 싸울 일이 아니라 ‘함께’ 대처할 일이다. 파트너십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탄소중립법)하는 데서 출발한다. 노동자가 전환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짊어지는 것도 정의에 어긋나지만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고는 기후정의도 실현되지 않는다.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한 우리는 멀리 가고 빨리 가야 한다.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패배자(losers)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노동 존중은커녕 노동 배제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 노동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일은 늘 조마조마하다.
박태주 (노동 연구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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