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도 '○○님', 과장·차장 모두 '책임'.. "호칭만 바꾸면 오히려 불편"

김우영 기자 2022. 1. 1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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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직책, 직급 상관없이 호칭만 통일한다고 수평적 문화가 정착될지 의문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올해부터 사내 구성원 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자 최근 한 직원은 사내 온라인 소통 채널 ‘엔톡’에 이같이 글을 올렸다. 이 직원은 “누가 제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단편적 변화로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며 “오히려 ‘님’ 호칭 때문에 점점 부르지 않는 문화가 정착될 것 같다. ‘님’ 호칭을 강제하기보다 자율에 맡기면 좋겠다”고 적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수평적 기업 문화를 도입하겠다며 직급제를 폐지하거나 호칭 개편 실험을 계속하는 가운데,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회사가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은 긍정적이란 평가가 있지만, 수평적 문화가 만들어지기엔 역부족이며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15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329180)그룹은 올해부터 과장, 차장, 부장의 구분을 없애고 ‘책임’ 직급으로 일원화했다. CJ ENM(035760)은 아예 직급제를 폐지했으며 삼성전자(005930)는 부사장과 전무 등 임원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하고 직급 승진 연한인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까지 없앴다. 능력만 있다면 직급을 거치지 않고 30대 임원, 40대 사장이 될 수 있는 ‘초고속 승진’의 길을 열어뒀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직급제 개편과 함께 호칭도 통합되고 있다. 롯데온과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부터 직급·직책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도 ‘권영수님’으로 부르는 식이다. NH투자증권(005940)은 업계 최초로 PB(프라이빗뱅커)의 영업조직 직원의 직위별 호칭을 ‘어드바이저’로 통일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해부터 사원부터 부장을 PM(프로페셔널 매니저)으로 통일했다. 현대차(005380)그룹은 2019년부터 6단계였던 직급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 등 2단계로 축소·통합하고 승진 연차를 폐지했다. 재계 관계자는 “수평적 문화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이에 맞춰 인사 제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며 “연차에 상관없이 성과와 능력만 좋다면 얼마든지 진급의 기회를 주겠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직장인 등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수년 전 직급을 통합했다는 모 기업의 과장급 직원 A씨는 “대학에서 군대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 선·후배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직급이나 호칭의 변화만으로는 기업 문화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고연차 직원들도 불만이 있다. 모 기업의 차장급 직원 B씨는 “저연차 직원과 ‘매니저’로 직급이 같아 거래처 사람을 만났을 때 낮은 연차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며 “승진과 연봉 상승 기회가 줄면서 차장과 부장 승진을 앞둔 직원들의 불만이 컸다”고 말했다.

직급제 폐지 이후 여러 부작용 때문에 전통적 직급체계로 다시 돌아간 회사도 많다. 한화그룹은 2012년 사원부터 차장까지 ‘매니저’로 직급을 통합했다가 2015년에 직급제를 부활시켰다. 업무 현장에서 거래처나 고객에게 직급을 다시 설명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KT(030200) 역시 2010년에 직급제를 폐지했으나, 임금인상률이 낮아져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2014년에 직급제로 회귀했다.

직급제 개편의 효과를 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직급을 없애고 직원 간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한 모 기업의 직원 C씨는 “다른 부서 사람을 만날 때 직급을 몰라 호칭이 난감했던 일이 많았다”면서 “호칭이 통일된 뒤부터 편하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된 점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직원 D씨는 “사내 시스템에서 연차를 확인할 수 없게 되면서 단일 직급제가 더 빨리 정착됐다”며 “직급제 개편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회사에서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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