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수출 1兆 달러'· 尹 '잠재성장률 4%'..'How' 없이 질러 놓은 대선 경제 공약

세종=전준범 기자 2022. 1.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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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 2%인데.. "연 7.8%씩 늘면 가능"
명목 국민소득 연 5%씩 성장해도 5만달러까지 7년 필요
尹은 잠재성장률 4% 공약..기관 대부분 1% 초반대 전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지방자치대상 및 한국지역발전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야 대선 주자들이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떠는 유권자 마음을 얻기 위해 연일 경제 분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후보들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심화한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위기를 극복해낼 적임자가 자신이라며 ‘임기 내 수출 1조 달러’ ‘국민소득 5만 달러’ ‘잠재성장률 4%’ 등의 약속을 잇달아 내놓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공약이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를 제시하고, 그 수치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마저 없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공약을 접한 이들은 “선언적인 측면을 고려하면서 보려고 해도 공허한 목표치뿐이라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와 관련해 유권자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면 공약의 세부 이행 로드맵을 함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월 12일 서울 서초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산업 분야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李 “수출 매년 7.8%씩 늘면 임기 내 1조 달러 가능”

15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여당 대선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4일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기아차 공장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민소득 5만 달러와 세계 5강 경제 대국을 골자로 하는 경제 공약을 발표했다. 전날(3일)엔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제시했다.

이 중 이 후보가 말한 국민소득이 국민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GNI)이라면, 이는 명목 국민소득을 추계 인구로 나눠서 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GNI는 16년 전인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했고, 5년 전인 2017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현재는 3만5000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현시점에서 GNI 5만 달러를 달성하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할까. 환율 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할 경우, 명목 국민소득이 연 3%씩 성장하면 12년 후 5만 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 연 5%씩 성장하면 7년이 걸린다. 다음 대통령 임기 내에 5만 달러 고지를 밟으려면 매년 6% 이상의 성장세가 유지돼야 한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11일 “임기 내에 도달할 수치 목표는 아니고, 우리가 지향할 목표”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 후보는 12일 산업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는 ‘임기 내 수출 1조 달러 달성’을 들고나왔다. 그러면서 세계 5강, 국민소득 5만 달러와 함께 자신의 공약을 ‘1·5·5 성장 공약’이라고 불렀다. 무역 전문가들은 임기 내 수출 1조 달러도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쉽지 않은 목표라고 말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연간 6445억4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후보는 수출이 앞으로 매년 7.8%씩 늘어나면 임기 내 1조 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작년 수출 증가율이 25.8%인 점을 고려할 때 이 후보가 말한 7.8%는 낮은 문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년 수출 증가율에는 2020년 팬데믹 충격의 기저효과가 반영됐다”며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2.03%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로 여러 연구기관에서 전망한 올해 수출 증가율은 3% 안팎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지난해 수출 증가율에 대한 기저효과, 오미크론에 따른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 등을 감안하면 3% 수출 증가율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월 11일 서울 성동구 할아버지공장 카페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 “노동·자본·생산 다 떨어지는데…잠재성장률 4%도 불가능”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고 ‘어떻게 해내겠다’가 빠진 경제 분야 공약을 내놓는 건 야당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이달 11일 서울 성동구 할아버지공장 카페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목표치를 현 2%에서 4%로 2배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경제가 보유한 자본·노동력·자원 등 모든 생산 요소를 활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 성장률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 목표에 대해서도 ‘달성하기 힘들다’라는 반응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력은 줄었고, 자본의 절대량은 줄거나 크게 늘지 않았다. 그다음은 생산성인데, 지금보다 얼마나 더 늘릴 수 있다는 답이나 실행방안이 나와야 한다”며 “어떤 기관도 4%를 전망하지 않고, 대부분 1% 초반대를 예상한다”고 했다.

우 교수는 “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하는 국가 중 한 곳인데도 생산이 거의 안 오른다”며 “정책 수단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 이상 잠재성장률 4%는 코스피 5000 달성을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잠재성장률 4%는 쉽지 않은 숫자”라고 했다. 석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2017~2018년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한 뒤 한국의 장기 GDP(국내총생산) 상승률이 1% 낮아졌다”며 “향후 3년 정도 여유를 두고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봤을 때 1% 정도는 올라갈 수 있다(잠재성장률 3%)”고 했다. 그는 다만 “이는 차기 정부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국회에서 모든 법안이 다 통과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때”라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겸하지 않는 경제 공약은 표를 얻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선 후보들이 제시하는 숫자는 ‘경기 회복을 위해 이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 표명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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