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관피아 20년' 저축은행중앙회장, 이번엔 다를까

유진우 기자 2022. 1.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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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식 현(現) 저축은행중앙회장의 임기가 이달 끝나는 가운데,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한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 후보들과 민간 출신 후보 사이 막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장 자리는 자산을 전부 합치면 102조원이 넘는 전국 79개 저축은행을 대표하는 자리다. 임기는 3년으로 연봉은 성과급을 합쳐 5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20년이 넘도록 정작 저축은행 출신이 중앙회장 자리에 앉은 적이 없다. 대신 퇴직한 고위 경제 관료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현직 박재식 회장을 포함해 2000년대 이후 회장에 오른 7명 가운데 6명이 경제관료 출신이다. 2000년대 문을 연 12대 문병학 전 회장은 통계청을 나왔다. 13대 김유성, 14대 김석원, 15대 주용식, 16대 최규연 전 회장은 재무부나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지난 22년간 관료가 아닌 민간 출신 회장은 2015년 뽑힌 이순우 회장이 유일하다. 이 전 회장은 우리은행장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은행권 인사다. 그 역시 경력에서 저축은행을 거치진 않았다.

저축은행 출신 인사가 중앙회장에 가장 근접했던 사례는 바로 직전 선거였던 2019년이다. 당시 남영우 전 한국투자저축은행 대표가 민관에서 7명이 후보로 쏟아져 나온 와중에, 결선 투표에 오르며 분전했지만 역시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출신 관료였던 박재식 현 회장에게 패배했다.

이번 선거도 관피아 출신 후보가 독식하다시피 한 중앙회장 자리에 민간 출신 저축은행 대표가 도전장을 내미는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오화경 하나저축은행 대표이사가 가장 유력한 중앙회장 후보로 꼽힌다. 오 대표이사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아주저축은행, 2017년 아주캐피탈을 이끌다 2018년 하나저축은행 대표에 올랐다. 저축은행업계는 오 대표이사가 부임한 이후 2017년말 1조1083억원이었던 하나저축은행 자산을 4년 만에 2조2359억원으로 두 배 이상 불린 점을 높게 평가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가 출신으로는 이해선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정완규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후보로 거론된다. 두 사람 모두 국장급인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을 끝으로 금융위원회에서 퇴임한 관료다.

중앙회는 다음달 17일 임시총회를 열고 새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중앙회장 선거는 전국 79개 저축은행 1사가 1표씩 투표권을 행사하는 직접 선거다. 79표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52표를 먼저 얻은 후보자가 중앙회장으로 선임된다. 후보 가운데 한 명도 3분의 2가 넘는 표를 받지 못하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사람을 상대로 재선거를 실시해 과반 찬성자를 중앙회장으로 뽑는다.

79개 회원사가 모두 참가하는 데다, 3인 이상이 입후보한 이번 선거 특성상 표심을 잡기 위한 후보들의 막판 수 싸움은 여느 때보다 치열하다. 영업지역이 수도권인지 지방인지 여부, 오너가 있는지 혹은 지주사 소속인지 여부, 자산 규모 차이 같은 요인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내·외부에서는 ‘이제 저축은행도 저축은행 출신 회장을 가질 때가 됐다’는 주장과 ‘그래도 대관 업무에는 관료 출신만한 인물이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저축은행 출신 후보를 지지하는 쪽은 ‘비록 과거 20여년간 은퇴한 금융 관료들이 우세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금융권에서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입지가 달라진 만큼 업계 출신 대표 선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가계·기업대출 잔액은 2017년 51조원에서 올해 1월 100조원(추정치)으로 2배가 늘었다. 대출 잔액이 여신액에 비례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축은행 여신총액도 같은 기간 2배 늘었다는 의미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는 중앙회장에게 바라던 역할이 단지 금융당국과 업계를 이어 주는 가교 정도였기 때문에 관료 출신 인사를 선호했다”며 “이제 서민금융 시장 전체 파이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전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저축은행 입지도 넓어졌으니 여러 저축은행 요구까지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업계 속사정에 박식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언제 생길지 모르는 저축은행 관련 규제를 완화할 때 협상력을 높이려면 관료 출신이 적절하다는 반박도 나왔다. 저축은행 역시 금융당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규제 산업인 만큼, 관피아 출신을 앉혀야만 금융당국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올해 저축은행 업권은 정부의 강력한 가계 대출 총량규제로 지난해보다 자산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대 마진이 줄어 수익성도 예년만 못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저축은행’ 순위를 주관하는 한국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저축은행 업계가 다른 금융권보다 강도 높은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업계를 대변할 수 있는 능력과 당국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서 회원사들의 표심이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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