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색 바랜 물건일지라도 추억은 생생하게 남아
오랜만이야! | 다비드 칼리 지음 | 마리 도를레앙 그림 | 이숙진 옮김 | 킨더랜드 | 32쪽 | 1만4000원
주말에 동네 벼룩시장이 열린다. “몇 년이나 안 쓴 물건이 가득하니, 이 참에 정리해보자”는 여자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 쓰는 물건이라고?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창고처럼 쓰이는 다락방으로 올라간 남자 앞에, 오래된 물건에 숨어 있던 추억들이 깨어나 활동사진처럼 재생되기 시작한다.
기억은 머릿속보다는 오히려 구체적 물건에 깃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희미하던 일이 물건 하나의 색깔, 냄새, 소리, 촉감 같은 감각으로부터 생생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책 속의 남자는 한술 더 뜬다. 만지는 물건마다 어릴 적 자기 모습을 기억해내고, 마음은 그 시절 소년과 함께 뛰논다. 악단에 들어가겠다며 연습에 열심이던 소년의 북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네에서 제일 멋졌던 페달 자동차를 타고 경주도 벌인다. 큰 물고기를 잡을 뻔했던 낚싯대를 집어들면, 컴컴한 다락방은 갈매기 날고 파도 넘실대는 바다로 변한다. 여전히 쌩쌩 달리는 장난감 기차, 아직 멀쩡한 트램펄린…. 빨간 목마 코만치를 타고 핑핑 화살을 쏘며 초원을 내달리다, 남자는 모종의 결심을 한다.
‘미니멀 라이프’ 전성시대다. 정리 잘하기, 잘 버리기에 관한 책과 전문가들이 비우고 덜어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몰아붙인다. 반대로 이 책은 정리하고 버리는 일에 젬병인 보통 사람들을 위로한다. 생활을 가볍게 한다는 핑계로 내다버린 소중했던 무언가는 없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오래되어 낡았다고 가치 없는 건 아니라고, 색 바래고 먼지 쌓인 물건이어도 누군가에게는 그만이 아는 소중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이에겐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소중함을 일깨울 테고, 어른에겐 추억을 곱씹는 소소한 행복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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