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탈원전 앞에서 힘 잃은 진실

박상현 기자 입력 2022. 1. 15. 03:03 수정 2022. 2. 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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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DB

문재인 정부가 5년간 밟아온 탈(脫)원전 족적을 되짚어보면 2010년 ‘타진요’ 사건이 떠오른다. 타진요는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가수 타블로에게 근거 없는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이다.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고, 새로운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타블로와 그 가족의 인생은 망상에 빠진 키보드 뒤편 음모론자들에 의해 송두리째 무너졌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타블로 측 승소로 끝났다. 하지만 진실과 음모의 싸움에서 결국 생채기 난 쪽은 진실이었다.

심리학에선 남의 말 듣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1960년 영국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제시한 이 개념은, 객관적 진실과 관계없이 자기 신념을 강화할 정보만 취사 선택하는 경향을 뜻한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구축한 세계에 흠집 낼 만한 진실은 간단히 무시한다. 타진요 사건 당시 타블로의 담당 교수였던 토비아스 울프 교수는 ‘(타블로가) 스탠퍼드대 영문과 학·석사를 3.5학기 동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내용의 공문에 직접 사인을 해 한국으로 보냈다. 타진요는 “울프 교수의 사인은 가짜”라고 했다. 진실은 이럴 때 힘을 잃는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의 미래를 두고 현 정권에서 발전적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정부가 확증 편향에 빠진 탓이 크다. 우리나라 중·장기 탄소 중립 정책을 결정한 탄소중립위원회에 원자력 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확증 편향의 일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달라며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제시한 의견서 역시 정부에는 ‘조작된 울프 교수의 사인’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사례를 들어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도 않다”고 했다. 우리 사정도 피차 다르지 않다며 원전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음모론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던 원전 업계 종사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숱한 강소 기업이 부도나고 도산했다.

정부 탈원전 정책에 앞장섰던 한수원과 산업부가 5년 만에 “국내 원전은 안전하고, 저렴하며, 친환경적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1978년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첫 가동을 시작한 이래 40여 년간 사고는 한 차례도 없었다. 원전 발전원가는 사후 처리 비용과 사고 대비 비용을 포함해도 다른 발전원보다 싸서 발전용 연료 수입에 드는 외화 지출을 연간 15조원씩 경감해줬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태양광의 4분의 1 수준이다. 탈원전 정책에서 타진요가 떠오르는 것은, 선동이 진실을 억압해도 결국 승리하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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