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채석진 미디어문화 독립연구자 2022. 1.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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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애덤 매케이, 2021)이 세계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막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다. 천문학자 대학원생 케이트와 그녀의 지도교수 민디 박사가 거대 혜성을 발견하여 위기 상황을 보고하고 백악관으로 이송되는 장면까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익숙한 패턴을 따른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는 영웅 서사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인정되지도, 말해지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은 선거 전략과 특정 기업의 이익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계속 유예하고, 언론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보다 연예인 커플의 이별을 압도적으로 비중 있게 다룬다.

채석진 미디어문화 독립연구자

이 영화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다층적으로 세밀하게 드러낸다. 기후 과학자 피터 칼무스는 자신이 수십 년간 기후 변화의 위험을 알리려고 노력하면서 매일 목격해 온 미친 현실을 이 영화가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The Guardian>, 2021·12·29). 예컨대 텔레비전 쇼에서 “우리는 모두 죽을 거다”라고 울부짖는 케이트의 모습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슬픔과 분노에 찬 목소리로 세계 정상들을 향해 “당신들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고 있다”고 외치는 모습과 겹친다. 또한 혜성의 유무를 둘러싼 논쟁은 기후 변화의 유무를 놓고 지속되고 있는 논쟁의 복사판이다. 혜성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조차 대통령은 “올려다보지 말 것”(don’t look up)을 외친다.

나 또한 이 영화에서 미디어 연구자로서 매일매일 목격하는 일상적인 미친 현실을 본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우리가 진실을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가로막는 ‘매개 사회’(mediatized society)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매개 사회는 일상이 점점 더 미디어를 매개로 구성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 영화에서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인물은 미디어 기업 경영자이다. 그는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정보들을 데이터로 축적하여 맞춤화된 서비스와 미래 예측 상품을 생산해왔다. 예컨대 그가 설명하는 새로운 스마트폰은 사용자의 생체 정보와 직접 연결되어 “말 한마디 할 필요 없이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사용자의 기분을 혈압과 심장 박동을 통해 포착해서 필요한 조치(웃기는 동영상 재생)를 취하여 “슬픔 감정이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은 우리에게 슬픔이나 우울함 같은 어둡고 무거운 감정들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밝고 가벼운 감정을 유지하도록 요구한다.

영화에서 케이트가 진실을 전달하려고 할 때 마주하는 가장 큰 저항은 이러한 감정을 둘러싸고 작동하는 미디어 규범이다. 인류 멸망에 대한 두려움을 날것으로 드러낸 케이트의 발언은 수많은 소셜 미디어에서 밈으로 유통되며 조롱받고, 심지어 케이트는 조울증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마땅히 공포스럽고 슬퍼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두려움과 슬픔은 날것이 아닌 팔리기 쉬운 상품으로 변형되어 전시되어야 한다. 이 속에서 “말 한마디 필요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미디어 기업의 홍보와 상반되게, 우리는 서로 보고 듣고 말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영화에서 민디 박사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이거나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들어야 한다. 저기 혜성이 있다. 도대체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고치지?”

채석진 미디어문화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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