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보라

김지연 전시기획자 입력 2022. 1.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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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존 아캄프라, 보라, 2017, 6채널 비디오 영상 설치, HD 컬러, 1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 62분, 스웨덴 빌드머싯 우메오미술관, TBA21 아카데미, 보스턴 ICA, 리스본 베라르도 컬렉션 박물관, 모스크바 차고 현대 미술관 공동 커미션 ⓒ Smoking Dogs Film; CourtesySmoking Dogs Films and Lisson Gallery, 사진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친애하는 알래스카 주민 여러분, 알래스카주에 멋진 일이 벌어집니다.” 알래스카의 찬란한 자연경관 사이로 개발 현장이 겹쳐 오를 때, 앵커리지의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과거’의 목소리가 전시장을 울린다. 앵커리지 부지를 사들인 부유한 자들이 약속한 ‘지상낙원’이 자연을 훼손하는 대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들은 그들에게 다가올 풍요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누군가 선택하고 제안한 삶의 방식 앞에, 한편은 호응하고, 한편은 침묵으로 동조하는 동안, 우리의 삶은 아마도 더 편안해졌고, 안전해졌고, 부유해졌다. 일단 우리는 그렇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어떠한가. 부산현대미술관의 ‘그 후, 그 뒤’ 전은 ‘다음 세대에게 다음이란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기후 비상 상황에 살고 있는” 현재, ‘우리’가 이대로의 삶을 그대로 지속한다면 다음 세대의 오늘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전시는 네 명의 작가를 통해 우회적으로 질문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소슬 학예사는 인류가 거의 사라지고 난 어떤 시점에 등장한 존재, 혹은 외계로부터 지구에 도달한 존재가 지구의 역사를 고고학적으로 들여다보고, 기록한다면 그것이 바로 존 아캄프라가 6개 채널에 담은 ‘보라’의 세계가 아니겠냐고 했다. 아캄프라가 엮은 풍경은 오염된 바다, 분주한 개발 현장, 닭장에서 사육되는 닭, 풍요로운 밥상, 여전히 고요한 자연, 파괴된 일상을 오간다. 광부의 폐가 석탄처럼 굳어가는 동안, 기차는 달리고 공장 굴뚝은 매연을 내뿜는다. 인류가 축적해 온 재난의 징후로 가득 찬 작품 앞에서, 이대로는 내일이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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