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주인의식 입각한 한·미 동맹 돼야

2022. 1. 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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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2003년도 이야기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언론의 적대감은 대단했다. 물론 정부에 미숙한 측면이 없지 않았겠지만 비판하는 측도 이건 아닌데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한 언론사에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핵심 네오콘 인사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려 노무현 정부의 외교를 비판했다. 그 기사는 미국 측 인사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읽으면 노무현 정부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정부 비판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비판이 디디고 서 있는 시각과 논리다. 비판자가 우리 국익의 기준에서 이러저러한 방법론이 잘못됐다는 방식이 아니고, 미국 행정부의 시각과 잣대를 여과 없이 이쪽에 들이미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사에도 국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미국 쪽 판단이 잘못됐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한·미 동맹의 군사적 타깃 확장
보수·진보 떠나 진지하게 따져 봐야
중국은 잘 관리해 나가야 할 대상
살얼음 위 걷는 것처럼 신중해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 2006년께까지의 부시 행정부 외교는 북핵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것이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거의 정설이 됐다.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도덕적으로 접근해서 실질적인 협상을 소홀히 했다. 결국 북한에 핵 능력 증강을 위한 시간을 벌어 주고 그들의 협상력만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맹 상대국 미국이라고 해서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무조건 미국과 불협화음만 안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입장에서 미국을 설득해서 양국 모두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 자체가 없다면 미국과 동등한 파트너로 동맹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동맹에 끌려가는 것이 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단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계속 바퀴를 굴려 대는 자전거 타기처럼.

선데이 칼럼 1/15
2015년께였던가? 오바마 행정부가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북한에 대해 손 놓고 있었을 때였다. 아까운 시간은 흘러만가고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키워 가고 있었다. 하루는 가까웠던 미국의 외교 분야 전직 관리와 북핵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어렵사리 속내를 드러내며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교착상황을 돌파할 좋은 기회 아니겠는가? 한국이 아이디어를 갖고 미국 쪽에 제안하면 북한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온 오바마 정부도 못 이기는 척하면서 따라가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왜 한국 정부마저 손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어쩌겠는가? 우리 정부 당국이 그럴 의지도, 외교적 상상력도 없었던 것을.

분단된 상황에서 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우리를 한없이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에서 대국들 간에 군사력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일제식민지 시대를 낳았고, 분단, 한국전쟁 등이 다 그런 경우다. 그런 지정학적 특수성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지금 더욱더 우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1년 반쯤 전이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 정책을 대결 방향으로 선회한 후, 미·중 군사 경쟁이 고조되고 있었다. 한국의 어느 싱크탱크에서 한·미 동맹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 미국 측 참석자들을 향해 “한국은 이러이러한 지정학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이를 고려해서 미국은 호주나 일본과 똑같은 일률적인 동맹 관리가 아니라 한국에 대해 일종의 맞춤형 동맹 관리를 해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 쪽에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어느 한국 참석자가 “한·미 동맹의 김을 빼려는 세련된 진보의 의견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미국 국방부 산하 어느 연구소의 보고서나 전직 고위관리의 논문에 이미 그와 유사한 논지의 제언이 나온 바 있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 앞에서 한국인끼리 당파 싸움하는 듯한 수치심과 함께, 한·미 동맹을 위해서는 한국은 어찌 돼도 좋다는 주객전도의 논리를 한국인의 입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미국 관리가 말했듯 미·중 사이에서 우리는 미국을 동맹으로 이미 69년 전에 선택했다. 우리의 국가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이기에, 바이든 정부의 민주주의 동맹외교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도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군사적 타깃을 북한을 넘어서서 중국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보수 진보를 떠나 초정파적 입장에서 진지하게 따져 봐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을 타깃으로 하는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자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 후 중국의 보복은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인가? 현실은 현실이다. 싫건 좋건 중국은 존재하고, 잘 관리해 나가야 할 대상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외교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신중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한·미 동맹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한반도 평화구축의 염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렇다. 그러나 국내 정파 논쟁에 매몰되어, 한국 사람이라는 주인의식과 방향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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