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 曰] "이제 너희 시대잖아"

장혜수 2022. 1. 1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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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5년 전 있었던 한 공연 영상을 새해 첫날 봤다. 영상은 지난 성탄절 직전 유튜브에 공개됐다. 공연 명칭은 ‘SEOTAIJI 25 TIME: TRAVELER’.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5주년 기념공연이다. 그런데 명칭에 꼬리표가 하나 붙었다. ‘feat. BTS’. 방탄소년단(BTS)이 함께하는 공연이라는 설명이다. 솔직히 공연 당시인 2017년 9월에는 공연하는 줄도 몰랐다. 당시 BTS는 이미 월드 스타였다. BTS는 그해 5월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서태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1992년 ‘난 알아요’가 담긴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으로 등장해, 그 시절 한국 청소년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문화 대통령’ 아닌가. 그런 두 스타가 함께한 공연을 몰랐다니. 이런.

백밴드의 오프닝 연주에 이어, 서태지가 ‘내 모든 것’을 부르며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 익숙한 전주가 흐른다. ‘난 알아요’. 서태지 혼자가 아니다. BTS 멤버 슈가와 RM이 함께한다. ‘환상 속의 그대’는 제이홉과 지민이, ‘하여가’는 정국과 뷔가 호흡을 맞춘다. BTS 멤버 전원이 함께한 ‘교실 이데아’ ‘컴백홈’이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다. 그런데 무대 위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서태지는 끊임없이 BTS에 주연 자리를 내준다. BTS는 서태지가 돋보이도록 조연을 자청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있다. ‘하여가’를 부르던 중 뷔가 서태지를 무대 앞으로 부른다. “태지 형, 좀 와 줘야겠는데.” 서태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 이제 너희 시대잖아. 보여줘 봐.”

「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 내주는 일
세대 간 소통의 출발점이 아닐지

1972년생 서태지가 올해 만 50세니까, 5년 전 공연 당시 45세다. BTS 맏형 진이 92년생으로 서태지와 20살 차, 막내 정국이 97년생으로 25살 차다. 공연 후일담에 따르면 첫 만남 때 서태지는 자신을 ‘아빠’라 부르라 했고, BTS는 정말로 ‘아버지’라 불렀다 한다. 20~25년 시차(아니 이 정도면 세대 차라고 해야겠다)는 무대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다. 이날 공연 후기에는 서태지 세대인 부모와 BTS 세대인 자녀가 함께 뛰며 감격한 얘기가 숱하다. 공연은 서태지와 BTS가 함께 부른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끝난다.

문득 또 다른 공연이 떠올랐다. 2012년 12월 미국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문화훈장 축하공연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건 영국 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 그리고 요절한 레드 제플린 드러머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이다.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르던 제이슨과 관객석의 플랜트는 반가운 표정으로 서로를 가리킨다. 아버지 친구(플랜트)와 친구 아들(제이슨)의 서로를 향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 뒤엔 사연이 있다. 1968년 결성된 레드 제플린은 12년 만인 80년 해체했다. 드러머 존이 사고로 죽자 다른 멤버들은 곧장 팀 해체를 결정했다. 제이슨은 당시 14살이었다. 2007년, 레드 제플린은 영국 런던에서 재결성 공연을 한다. 플랜트, 지미 페이지(기타), 존 폴 존스(베이스)에, 새 멤버인 드러머 제이슨이다. 세 명의 ‘삼촌’은 ‘조카’와 멋진 앙상블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흐른 2012년, 영상 속 플랜트와 페이지, 존스의 눈가는 줄곧 촉촉하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제이슨, 이제 너희 시대잖아. 보여줘 봐.”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두 후보가 20·30세대 마음을 잡으려고 애쓴다. 소셜미디어에 낯간지러운 동영상을 올리고, 각종 선심정책도 쏟아낸다. 그렇다고 잡힐까. 천만의 말씀이다. 해답은 서태지와 BTS, 레드 제플린과 제이슨 본햄에서 찾아보시라. 아마도 세대를 넘어선 소통은 이 말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외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너희 시대잖아.”

장혜수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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