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기자'에서 종군기자까지..100년의 분투

박혜민 2022. 1. 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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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깨질 때 더 빛난다
유리는 깨질 때 더 빛난다
한국여성기자협회 지음
나남

한국 전쟁 때도 여성 종군기자가 있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인 마거리트 히긴스, 그리고 한국인 장덕조다. 7남매의 엄마였던 당시 37세의 장덕조는 고1이던 큰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전쟁의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1932년부터 기자생활을 한 그는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여기자가 남기자하고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생각했다.

책 『유리는 깨질 때 더 빛난다』에 실린 이야기다. 기록에 거의 남아 있지 않던 한국 최초 여성 종군기자의 면면을 그의 딸인 박영애 작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장덕조에 더해 이 책에는 한국일보 사장을 지낸 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부터 ‘한국 첫 여성’ 해외특파원·편집국장·논설위원 등 기자들이 직접 쓴 ‘분투기’가 실려 있다. 결혼하면 회사 그만둔다는 서류에 사인을 거부하고, 출산 후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고, 승진과 부서 배치에서 거듭되는 불이익을 견뎌낸 이야기는 우리 사회 여성의 삶,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종군 위안부 문제, 호주제 폐지 등을 이슈화해 여론을 이끌었다. “여성 면은 당신 여성해방운동 하라고 있는 지면이 아니에요” “(정신대라니) 여자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무슨 자랑이라고 그렇게 떠들어” 같은 핀잔과 반대를 무릅쓰고서다.

젊은 기자들의 삶과 고민도 나온다. 출산과 육아 휴직을 거듭하면서 굵직한 언론상을 받은 기자는 “육아하는 기자로서 제한된 시간과 체력 덕분에 나의 상대적 우위를 반드시 찾아야 했다”고 말한다. 2030을 위한 시사 콘텐트 ‘듣똑라’, 젠더 관점 뉴스레터 ‘허스토리’, 유튜브 채널 ‘씨리얼’ 등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시도에 앞장선 기자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책 말미에 30년 차 기자 20명이 경험에서 우러난 정직한 조언을 한다. 여느 직장인에게도 유용하게 들린다. 소설가 장강명이 “고민 많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나눠줬으면 좋겠다”며 “그 청년이 남자건 여자건 언론인을 꿈꾸건 그렇진 않건 간에 치열하고 생생한 철학과 조언이 가득한 책이기 때문”이라고 추천사에 쓴 대로다.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펴낸 이 책이 씨줄이라면, 나란히 출간된 『한국의 여성 기자 100년』은 날줄이다. 평생 한국 언론사를 파고든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한국 최초의 여성 기자 이각경부터 현재까지를 한 권에 담았다. 이각경은 1920년 매일신보에 ‘부인기자’로 채용됐다. 당시 공채 조건 중 하나가 ‘가장(家長) 있는 부인’었다. 시대적 제약에도 여성 기자들의 활약은 면면히 이어지고 넓어졌다. 독립투사, 사회운동가, 소설가, 시인이었던 기자들도 여럿 나온다

박혜민 기자 park.hy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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