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35] 와락, 왈칵, 뭉클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됐다. 믿지 못한다는 건 사람을 의심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법을 힘들게 익혔다는 말에 가깝다. 특히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절로 무장된 사람들에게 더 그렇다. 과도하게 호의가 있었던 사람들의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했던 탓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호의’ ‘친절’ ‘착함’ 자체가 아니라,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과도함’이다. ‘착한 것’과 ‘착해 보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착하다’는 말은 보통 잘 참는다는 뜻으로 ‘순수하다’보다는 ‘순진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과거에 비해 어린이가 아닌 어른에게 착하다는 칭찬은 반드시 좋은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역경을 많이 겪은 내 지인은 착한 사람을 “아직 나쁜 상황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라고까지 정의하기도 했다. 사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놓일 때 그 본심과 진면목이 나온다. 한계 상황에 빠지기 전에는 본인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기초로 해서 쓴 책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그는 “사람들은 사소한 피해를 입었을 때는 보복을 꾀하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때는 복수할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면 복수를 걱정할 필요 없게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왕에게 조언한다. “군주는 비난받을 만한 일은 남에게 미루고 자비를 보일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한 행동과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믿는 하이에크 같은 철학자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쪽을 믿든, 우리를 ‘와락’ 안아주고, 우리를 위해 ‘왈칵’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뭉클’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결코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다. 늘 그랬지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아야 하는 우리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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