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보르헤스와 여행을 떠난 문학도 [책과 삶]
[경향신문]
보르헤스와 나
제이 파리니 지음·김유경 옮김
책봇에디스코 | 368쪽 | 1만8000원
1986년 6월의 어느 날, 작가 제이 파리니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사망 소식을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를 추억하며 파리니는 눈물을 흘린다.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와 문학도 파리니는 약 15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 파병을 피해 미국을 떠나 공부 중이던 파리니는 보르헤스의 번역자 알레스테어의 요청으로 약 일주일간 보르헤스를 돌보게 된다. 파리니에 따르면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고 말을 엄청 많이” 하는 보르헤스는, 그에게 갑작스러운 ‘하이랜드’ 여행을 제안한다.
젊은 문학도에게 문학계의 거목과 함께하는 여행이 흥분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그는 보르헤스의 소설을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보르헤스의 명성에 대한 의심도 있었는데, 보르헤스가 “마크 트웨인이나 러디어드 키플링 정도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옥스퍼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라는 말에야 그를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할 정도다.
여행이 시작되고 북해를 만난 파리니가 “대낮인데도 바다는 제법 어둡네요. 파도가 치고요”라고 말한다. 보르헤스가 “‘어둡다’는 건 세부적이지가 못해. 그 색깔은 어떤가? 비유를, 이미지를 찾아. 나는 자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네. 묘사는 계시야! 그림을 창조하는 언어지”라고 조언한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메타포”에 대해서 말하던 장면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여행을 통해 파리니는 변화를 겪는다. “그를 만난 후의 나는 그를 만나기 이전의 나와 결코 동일할 수 없으리라는” 감정을 느낀다. 보르헤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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