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이 무서워요" 고통받는 소년.."네 잘못이 아니야" 품어주는 나비 [그림책]

유수빈 기자 2022. 1. 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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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이와 칼
김숨 글·황미선 그림
우리나비 | 40쪽 | 1만3000원

아이와 칼, 언뜻 어색하고 낯선 단어의 조합이지만 지금도 어딘가에는 어쩔 수 없이 칼을 쥘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어느 날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단체 IS에 납치돼 군사교육을 받고 악몽에 갇혀버린 야지디족(이라크 북부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 민족) 소년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살기 위해 살육의 훈련을 겪은 소년의 손은 자라난다. 소년이 들게 되는 칼도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진다. 소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용되는 제 손을, 하염없이 자라나는 손가락을 저주한다. 엄마를 베고, 누나를 잃고 혼자 남은 소년은 제 손이 원망스럽다. 사막에서 예고 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피할 수 없듯 단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소년이 겪게 된 일이다.

“나는 내 손가락이 자라는 게 무서워요.” 움츠러드는 소년의 손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말을 건넨다. “네 엄마도 널 갖고 꿈을 꾸었겠지. 세상 모든 아이들은 엄마가 꿈을 꾸고 난 뒤에 태어나니까.” 네 잘못이 아니라며 가만히 품어주는 나비를 만난 소년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생각한다. 칼의 흔적은 모래바람에 조금씩 지워져 사라진다. 언젠가는 소년도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 <아이와 칼>은 작가 김숨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소설을 쓸 무렵 알게 된 김 할머니의 태몽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여기에 영국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 어린이 책 부문에 선정된 황미선 작가의 그림을 더해 완성했다. 김 작가는 “김 할머니를 기억하며 전쟁 폭력에 노출돼 고통받는 소년, 소녀들의 해방과 평화를 기원하며 이 책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전쟁 범죄의 역사 속에서 피해 생존자들의 연대도 끈끈하게 이어진다. 2019년 향년 93세로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다. 피해생존자로서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 및 무력 분쟁 지역의 어린이를 위해 힘썼다. 김 할머니는 전쟁 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수많은 전쟁 폭력 피해자들에게 엄마의 품을 내어주었다. 그는 생전 “죽거들랑 훨훨 나비가 되어서 온천지 세계로 날아다니고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날의 아픔을 삭인 나비는 기꺼이 다른 상처를 받은 이들을 품는다. 아팠던 만큼 더 포근하고 단단하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빼곡히 박제된 나비들 사이사이 어디론가 날아간 나비의 흔적이 보인다. 표본 상자 밖으로 날아간 나비들이 저마다의 날갯짓으로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바란다.

유수빈 기자 soo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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