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하는 자여, 그대 영혼은 이미 지옥에 [박상진의 우리 시대의 단테 읽기 ⑥]

박상진 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입력 2022. 1.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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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흉악 범죄 '위조'

[경향신문]

단테의 지옥에서 매춘 알선, 부패, 위선, 위조 등 열 가지 사기죄를 저지른 이들은 제8옥 말레볼제에 갇힌다. 위조는 사기죄 열 가지 중 가장 악독한 범죄다. 위조자들은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살이 썩어가고, 탈수 속에서도 물조차 입에 댈 수 없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위조자들이 처한 지옥의 모습을 그린 그림.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지옥 밑바닥

이성이라는 미덕 이용한 사기죄는
인간임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것

단테의 지옥에는 사기꾼들이 득실거린다. 그만큼 저지르기 쉽고, 종류도 다양한 범죄가 ‘사기’라는 얘기다. 사기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역행하여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이기에 해악의 정도와 범위가 매우 큰 범죄다. 단테는 사기를 “사람만이 행하는 죄악”([지옥] 11곡 25행)이라 부른다. 인간의 고유 능력인 이성을 적극 이용해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성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사기는 절제를 동반한다. 절제를 못할수록 커지고 드러나는 다른 죄들과 달리, 사기는 절제를 잘하면 잘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절제가 인간을 짐승과 구별해주는 최고의 미덕이라면, 사기는 그 미덕을 범죄에 의도적으로 가담시키는 일이다. 그 결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절제가 오히려 인간을 짐승보다 못하게 만든다. 사기는 인간임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 7권에서 사기를 부절제와 구별하여 ‘내적 확신이 깃든 짐승의 마음에서 나오는 죄악’이라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할 때보다 남을 속일 때 행동에 확신을 갖는다. 절제하지 못한 사람은 죄를 뉘우치거나 인정하지만, 남을 속인 사람은 죄가 아니라고 항변하거나, 잘못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숨기고 속인다. 자기도 모르게 남을 속여 피해를 끼쳤어도 죄가 되는데, 그래도 변명을 하는 수가 많다. 자기가 저지른 죄를 부정할 때에도 절제력을 발휘하여 기만하려 드는, 죄를 짓는 과정과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단테는 [지옥]의 거의 반(18~34곡)을 사기에 할애하여 세세하게 분류, 분석, 묘사한다. 단테는 사기를,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로 크게 나눈다.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는 단 한마디로 ‘배신’이라 잘라 말하고, 배신자들을 코키투스(Cocytus)라 불리는 지옥의 맨 밑바닥에 몰아넣는다. 반면,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는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매춘 알선, 아첨, 성직 매매, 예언, 부패, 위선, 절도, 허위 조언, 분열 획책, 위조 등 열 가지나 된다. 단테는 이런 사기를 저지른 자들을 코키투스 바로 위층, 말레볼제(Malebolge)라 불리는 곳에 가둔다. 그런데 그중에서 위조를 맨 아래에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끈다. 단테의 지옥에서 죄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무겁다. 그러니 말레볼제에서 위조자가 뚜쟁이보다 열 배는 더 나쁜 놈이다. 또, 아래로는 배신자밖에 없으니, 배신자 빼고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다.

■위조자는 지옥에서 넘버 투

피렌체의 금화 피오리노. 세례 요한과 백합이 새겨졌다.
사기의 유형 중 가장 최악은 위조
공동체 질서 어지럽히는 중범죄
피렌체의 화폐 위조범 아다모는
지옥에서 영원히 탈수증 시달려

문서나 화폐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공리 차원에서 발명되었고 활용된다. 단테는 문서와 화폐의 위조를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범죄로 간주한다. 특히 당시 새롭게 출현한 상인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던 상황에서 경제와 사회의 불안을 초래하는 행위를 더욱 엄중하게 보았을 것이다. 화폐를 위조하여 지옥 밑바닥에 처박힌 아다모는 금융 산업에 토대를 둔 피렌체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고, 피렌체 경제가 주축을 이루던 유럽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살아서는 바라는 모든 걸 가졌던 화폐 위조범 아다모. 지금 지옥에서는 물 한 방울을 갈망할 뿐이다.

나를 철저히 살피는 엄격한 정의가
내가 죄를 지은 곳을 떠올리게 하여
내 한숨이 더 가빠지게 만드는구려.
거기는 로메나, 내가 세례자로 봉인된
합금을 위조했던 곳인데, 그 때문에
난 불에 탄 육체를 위에 남겼소.
([지옥] 30곡 70~75행)
이 화폐를 위조한 아다모는 지옥에서 배가 부풀고 갈증에 시달리는 벌을 받는다.

아다모는 이탈리아 중북부의 드넓은 산악지대에 위치한 로메나에 은신하며 가짜 피렌체 금화를 주조하고 유통시켰다. 피오리노(fiorino)라 불리는 피렌체 금화의 금 비율은 24캐럿인데, 아다모는 21캐럿으로 속여 죄를 선고받았다(“삼 캐럿의 쇠 찌꺼기가 든 피오리노”. [지옥] 30곡 89행). “잘못 태어난 자”라 불리는 아다모는 자기가 위조한 피오리노도 “잘못 태어난” 화폐로 만들었다. 지옥의 동료는 그를 “어떤 마귀보다도 더한 놈”([지옥] 30곡 117행)이라 비난한다.

피오리노에는 피렌체의 상징인 백합과 피렌체의 수호성인인 세례 요한(“세례자”)의 얼굴이 앞뒤에 새겨져 있다. 위조된 피오리노는 피렌체의 자부심이 깃든 백합을 가짜 꽃으로 만들고, 영혼을 물로 거듭나게 하는 세례 요한도 가짜로 만든다. 가짜 백합이 가짜 자부심을 낳듯, 가짜 세례 요한은 가짜 물을 적셔줄 뿐이다. 단테가 만난 아다모는 극심한 탈수증에 시달리고 있다. 피오리노에서 금을 빼낸 죄로 인해 몸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화형을 당하고 지옥에 떨어진 그는 그곳에서도 영원히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위조자, 영혼은 이미 지옥에!

위조자들은 한여름에 창궐한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처럼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살이 썩어 문드러지거나, 온몸에 얼룩덜룩 덮인 딱지를 잉어 비늘 벗기듯 손톱으로 벅벅 할퀴며 괴로워하거나, 극심한 탈수에 시달려 사지와 입이 뒤틀린 채 물 한 방울을 갈망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지옥] 29~30곡). 육체가 훼손되는 형벌은 그들의 위조 행위가 정의로운 사회 질서의 원리를 심각하게 파괴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뒤틀리고 훼손된 위조자들의 몸은 원래 모습을 알아볼 길이 없을 정도다. 이는 원래 그러해야 하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위조 행위에 어울리는 형벌이다.

지옥의 형벌은 죄인의 죄를 거꾸로 돌려주는 ‘응보’의 성격을 취하기에, 죄인은 자기 죄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조자들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또다시 자기 죄를 덮고 감추며 둘러대기에 바쁘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위조된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보인다. 위조된 존재는 가짜로 존재하는 것이며 존재와 삶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단테에 따르면 위조자는 육신이 죽기도 전에 영혼부터 지옥으로 직행한다. 따라서 세상에서 이들은 영혼이 없는 좀비와도 같은 존재다.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다([지옥] 33곡 121~132행). 인간의 탈을 썼을 뿐 영혼이 없는 이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 영혼이 있을 수 없다. 영혼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듯, 영혼 없는 세상은 인간의 세상이 아니다. 단테가 위조자를 그토록 엄중한 죄인으로 본 이유다.

■잘못된 사면은 위조된 화폐

진짜 반성과 책임, 법적 근거 없는
가짜 사면장은 사회를 혼란케 해
위조자의 본질은 자기 성찰의 결여
냉철한 성찰 없다면 속는 자도 책임

천국 꼭대기에서 베아트리체는 가톨릭 사제들이 무분별하게 남발한 사면을 신랄한 어조로 비난한다. 본분을 잊은 사제들이 죄를 용서한답시고 허풍을 떨 때, 새가 둥지를 틀 듯 악마가 그들 머리 꼭대기에 들어앉는다. 사람들이 이 꼴을 알아본다면 사면의 약속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불의한지 깨달을 텐데, 죄를 사면해준다는 사제들의 무책임한 약속을 맹목적으로 믿는 청맹과니가 되어 무턱대고 천국행을 기대한다.

“그러나 고깔에 그런 새가 둥지를 트니,
사람들이 그를 본다면, 저들이 의탁한
사면이 어떠한지 알 거예요.
그로 인해 많은 어리석음이 세상에서
커져 갔고, 어떤 근거의 증명도 없이
사람들은 온갖 약속으로 몰려들지요.
성 안토니오의 돼지가 이것으로 살찌고,
그보다 훨씬 더 비대한 다른 자들이
인각 없는 동전을 내주며 살을 불립니다.”
([천국] 29곡 121~126행)

“성 안토니오”는 이집트의 은둔 수사 안토니우스를 가리킨다. 3~4세기경 사막에서 고행하며 악마와 재화의 유혹을 물리치고 올바른 길을 걸은 성인으로 유명하다. 중세 사람들은 성 안토니우스가 특히 전염성 피부질환을 물리치게 해준다고 믿었다. 위조자들이 받는 벌이 피부질환임을 생각하면, 성 안토니우스는 특히 위조의 죄를 사면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성 안토니우스를 그린 그림에는 흔히 돼지가 등장한다. 그가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돼지 지방을 사용했다거나, 돼지 몸을 빌려 나타난 악마를 물리치고 그 돼지를 길들였다는 얘기가 중세에 떠돌았다. 안토니우스 수도회 사제들이 돼지들을 길거리에 그냥 풀어놓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독실한 신도들이 먹여 길렀다. 그렇게 사제들은 사람들이 돼지에 깃든 성 안토니우스의 영험함을 신봉하여 사면을 받도록 부추겼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일단 믿고 보는 어리석음이 세상에 퍼져나가면 나갈수록 사면을 남발하여 부를 축적했다. 그렇게 사제들은 성 안토니우스의 돼지를 거짓으로 흉내 내면서 그들의 돼지들보다 더 비대해졌다. 성 안토니우스의 돼지는 진실한 신앙의 상징이지만, 사제들의 돼지는 타락한 가짜 신앙의 상징이다.

사면의 진실성은 신앙의 최고 가치다. 베아트리체가 말하는 “인각 없는 동전”이란 위조된 화폐는 물론이고, 어떠한 정통성도, 책임도, 법적 근거도 없는 가짜 사면장을 가리키기도 한다. 잘못된 통화 정책이나 위조 화폐의 유통이 경제를 망치듯, 하느님이 인간의 죄를 없애준다며 손에 쥐여주는 가짜 사면장의 남발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단테는 ‘위조’의 본질을 사악한 의도를 갖고 꾸미는 거짓, 겉치레, 변장(가면), 흉내, 위증, 구실, 변명, 핑계, 허위의 공언(허풍), 허영으로 보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실체를 감춘다는 점이다. 위조자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다. 스스로를 위조했기에, 스스로를 가리고 변장했기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는 성찰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게다가 위조자는 원래의 자신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저 변명을 늘어놓으며 정의를 흉내 낼 뿐이다. 한 가지 유념할 일은, 속이는 자는 물론 나쁘지만, 속는 자도 떳떳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속아 넘어가려 애쓰는 판국이면 속이는 자만 비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속는 자의 냉철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박상진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박사. 이탈리아 문학 및 비교문학 전공. 미국 하버드대와 UC버클리 방문교수를 지냈고, 현재 부산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곡> <데카메론> <아방가르드 예술론> <대중문학론> 등의 역서와 <단테 ‘신곡’ 연구> <사랑의 지성: 단테의 세계, 언어, 얼굴> <단테>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 <열림의 이론과 실제> <비동일화의 지평> <Comparative Study of Korean Literature: Literary Migration> 등의 저서가 있다.

박상진 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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