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이번엔 현실화될까
대통령 선거 후보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이 제도를 둘러싼 분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병원 진료를 받으면 서류 없이 전자문서를 통해 보험금 청구가 이뤄지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청구 간소화를 원하는 보험사와 이를 반대하는 의료계가 대립하면서 1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4일 정치권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사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보험소비자 보호 공약'을 내놨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란 보험금 청구 문서를 전자문서로 전환해 의료기관에서 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로 전송하도록 하는 제도다. 보험가입자가 일일이 서류를 발급받아 애플리케이션에 관련 서류를 등록하거나 보험사에 직접 제출하던 복잡한 청구 과정이 사라지게 된다.
이 후보는 보험회사, 의료계와 충분히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전제로 국민 편의 증진이라는 목표와 의지가 명확하다면 구체적인 방안 마련과 추진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병원의사협회의회는 "보험 소비자인 국민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고, 건강보험 제도의 한계를 자인하는 것이고, 공권력을 강압적으로 의료기관에 남용하는 정책"이라며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현재 실손보험금 청구는 대부분 아날로그 방식이거나 영수증 사진을 찍어 보내는 부분적 디지털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39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번거로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가입자가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 4월 금융소비자연맹과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만20세 이상 보험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최근 2년 이내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47.2%를 기록했다. 미청구 진료의 95.2%는 30만원 이하 소액 진료였다.
청구를 포기한 사유로는 진료금액이 적어서(51.3%), 진료당일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6.6%),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3.5%) 등이었다. 실손 가입자 4명 중 1명꼴로 복잡한 청구절차 때문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실손 청구가 편리하다고 응답한 경우는 36.3%에 그쳤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 개선 권고에 따라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보험업계와 정부, 소비자단체가 한목소리로 청구 간소화를 요청해 왔지만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의료 데이터가 보험사로 자동으로 넘어가게 되면 환자 의료기록 유출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보험사가 이를 악용해 보험 문턱을 높이는 등 영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의료계가 우려하는 것은 향후 정부가 비급여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비)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 계류된 보험업법 개정안에서는 병원이 환자 요청에 따라 자료를 심평원에 보내고, 심평원이 이를 다시 보험사로 보내도록 했다.
보험사는 심평원이 진료정보를 전달하는 중계기관 역할을 하기를 원하지만 의료계는 전 국민의 의료정보가 담긴 정부망을 민간 보험사가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료계는 지난 4월 심평원을 거치지 않고 핀테크 회사가 개발한 모바일 앱을 통해 가입자가 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심평원이 보험 청구 목적으로 얻은 정보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돼 있다. 보험업계는 심평원이 이미 개별 의료기관이나 보험사와 연결된 전산망을 보유했기에 이를 활용해야 손쉽게 청구 간소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심평원이 보험 청구 목적으로 얻은 정보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돼 있다. 보험업계는 심평원이 이미 개별 의료기관이나 보험사와 연결된 전산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야 손쉽게 청구 간소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은 지난 13일 소비자들의 보험금 청구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 회장은 "실손 청구 전산화 미비로 소비자는 물론 의료기관, 보험사 모두에 불편을 초래하고 ESG 측면에서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며 "3900만명에 달하는 실손 가입자의 청구 불편을 해소하고 전 국민적 편의성이 증진될 수 있도록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수현기자 ksh@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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