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협치 리더십의 힘..전범국을 유럽 수장으로 바꿔놨다

김유태 입력 2022. 1. 14. 17:06 수정 2022. 1. 1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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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 김황식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2만원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독일 4대 총리 빌리 브란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독일은 참 기묘한 나라다. 나치의 깃발 아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인을 몰살했고,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하지만 '전범국가' 독일은 오늘날 '유럽의 리더'로 불린다. 포로가 된 1120만명의 자국군, 패망한 130개 도시, 전(全) 유럽의 불신을 딛고 일어나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 나라가 독일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막후에는 독일 총리들이 있었다.

전후 독일을 재건한 총리들의 삶과 정치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880일간' 한국 총리를 지낸 김황식 전 총리다. 내정 당시 여야가 동시에 환대했고 훗날 '일 잘하는 총리'로 기억되는 저자는 독일 총리들의 얼굴에서 무엇을 봤을까.

먼저 1대 총리부터. 콘라트 아데나워는 1917년 쾰른의 최연소 시장에 당선됐다. 사실 그는 임기 동안 히틀러의 나치를 군소정당 수준으로 과소평가했다. "나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쾰른 공항에 도착한 히틀러를 영접하러 나가지 않았다. 17년간 시장으로 재임한 그는 1933년 나치가 실권을 잡자 게슈타포에 체포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무력했던 시간을 지나 종전 소식이 들리고, 아데나워는 쾰른시장에 재임명됐다. 근소한 차이로 1대 총리로 뽑힌 그는 내치와 외교에 동시 집중했다. 실업자 축소, 주택 건설 촉진, 프랑스 관계 개선, 친서방 정책 추진이 전후 독일의 오케스트라처럼 펼쳐졌다. 아데나워에게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었다. 후대는 그의 정치를 '전략과 실용'으로 기억한다.

3대 총리 쿠르트 키징거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중재위원회'였다. 대립하고 제압하는 편협한 정치를 싫어한 그의 성품은 독일 최초의 대연정을 이끌 총리로 적합했다. 통상적인 연정은 큰 정당이 작은 제3당과 손을 잡는 소연정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우파와 좌파를 대표하는 제1, 제2정당이 대연정을 해냈다.

탁월한 협치의 기반을 닦은 키징거가 막후에 있었다. 협치는 사실 나치에의 반작용과 같았다. 나치 시대의 권력 집중에 따른 혹독한 폐해를 경험한 독일은 타협과 절충을 통한 국정운영이 필연적이었다. 당시의 협치 정신은 세계 정치사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빌리 브란트는 독일의 전쟁 후 20여년에 걸친 새 도약에 결정적인 한순간을 만들냈다. 4대 총리로서 국내 개혁 정책을 주도했던 그는 정부의 내정 목표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독일의 동방정책도 이 무렵 초안이 세워졌다. 그의 무수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지나 그가 기억되는 한 장면은 다른 곳에 있다.

1970년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 희생자 추모비를 찾은 브란트가 무릎을 꿇은 그 장면 말이다. 훗날 그는 "헌화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이 장면은 타임지에서 그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이듬해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겼다.

저자는 독일의 대학에서 수학했고, 총리 재임 시절 독일 정치권 인사와 교류했다. 따라서 이 책은 '다 아는 얘기'의 요약본은 아니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 3분의 1가량에 자신의 경험을 담아 한국 정치사의 도약을 비는 데 할애했다.

특히 총리들의 암(暗)도 함께 조명했다. 아데나워에게 치명상을 입힌 슈피겔 기자 체포 사건,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가 개입한 기상천외한 뇌물 스캔들도 흥미롭다.

세계의 역사가 유구한 순환과 반복 속에 자리함을 믿는 독자라면 이 책은 우리 정치가 변화해야 할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과 같은 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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