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이 대통령 쌈짓돈인가 [쓴소리 곧은 소리]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과) 입력 2022. 1. 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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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재부 예산권 청와대 이전" 윤석열은 "병사 월급 200만원"
대선후보 산타클로스 아냐..임기 중 국가채무 증가 한도 공약하라

(시사저널=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과))

대통령은 정부의 곳간 관리 책임자다. 대통령선거는 정부의 살림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3·9 대선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집은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선물 보따리가 크고 근사하게 보이는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다음 대통령은 방만한 재정 지출로 경제를 망치거나 국가부채를 눈덩이처럼 증가시켜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조원 손실보상 당정 협의를 제의한 바 있으며, 윤석열 후보는 임대료 정부 분담에 50조원 지원 공약을 발표했다. 또 이재명 후보는 작년 12월24일 '병사 월급을 2027년까지 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으며, 윤석열 후보는 1월9일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라는 한 줄 공약을 제시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이 2021년 12월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의 재정 여력은 저출산 및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국민연금 개혁 등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337조원 증가

한편 이재명 후보는 디지털 전환에 135조원을 투입해 세계 5대 경제 강국을 만들어 2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공약한 반면, 윤석열 후보는 잠재성장률을 현재의 2%에서 4%로 높이고, 저출산 대책으로 출산에 대해 1년간 매월 100만원을 지원할 것을 공약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아예 기획재정부의 예산권을 청와대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라의 곳간 열쇠를 청와대로 가져와서 예산 담당 부처의 견제 없이 대통령의 정치 수단으로 쓰겠다는 것인가?

재원 조달 방법에 대해 두 후보는 공히 세수 증가분과 세출 구조조정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공약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어느 후보도 재정 부족으로 국가채무가 확대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이러한 조달 계획이 가능하다면, 문재인 정부는 무능하기 이를 데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장기재정계획 수립과 재정준칙 등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2016년 대비 2021년까지 국가채무를 337조원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과연 국가채무를 대폭 증가시키고도 변변한 성과가 없는 문재인 정부는 무능하고, 이재명 정부 또는 윤석열 정부는 국가채무 증가 없이도 이 엄청난 공약들을 이행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공약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임기 동안 해먹고 튀면 그만이라는 전형적인 먹튀 정권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문제는 '먹튀'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를 얻기 위해 공약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책 아이디어를 내걸었다가 당선 이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정책으로 추진할 경우, 심각한 국정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이나 토지 공개념에 기초한 부동산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 또는 윤석열 정부는 이미 문재인 정부가 했던 정책 실패의 과장을 답습하고 있는 것과 같다.

물론 후보들의 주장에도 근거가 있다. 2019년 통계로 우리나라 사회보장 지출의 대(對)GDP(국내총생산) 비율은 12.2%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2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인 반면, 일반정부부채의 대GDP 비율은 한국이 49%로 OECD 평균 109.5%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사회보장 지출을 확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직 재정 지출을 확대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OECD 비교 재정 여력'은 국민연금 개혁에 써야

그러나 다른 국가들이 고령화의 정점을 지난 반면, 우리나라는 고령화의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본다면, 재정 여력을 빙자해 국가부채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중위가정)이 2025년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30년 25.5%, 2040년 34.4%, 2050년 40.1%에 이르게 되며, 총부양비율(15세 미만과 65세 이상 인구 합계/경제활동인구 100명당)은 2021년 39.7명에서 2025년 44.5명, 2030년 51.4명, 2050년 95.8명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빠르면 2042년, 늦어도 2055년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 전망이 재정에 시사하는 핵심은 이제라도 고령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절실한 국민연금 개편에 대해서는 어느 후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작 국민에게 절실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는 반면, 선심성 공약들만 경쟁하고 있는 이번 대선의 흐름은 '희망은 코인뿐'이라는 청년 세대의 절규를 더욱 절박하게 한다.

한편 재정 건전성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경제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최종의 정책수단으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슈뢰더(Schröder)는 1998년 독일 총리에 올라 독일이 '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로 불리던 2003년 3월14일 연방하원에서 'Agenda 2010'이라는 일련의 복지 삭감 개혁정책을 발표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 정책에 대한 반발로 2005년 9월 총선에서 참패하고 사임했으며, 11월 그 후임으로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가 취임해 재정 건전성을 기반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함으로써 독일 경제는 '유럽의 패자'로 부활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비롯한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며, 코로나19 사태 대응 등 불가피한 지출을 포함하고 있으나, 당초 국민에게 공약하지 않은 337조원의 국가채무를 증가시켰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가채무를 재량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막기 위해 현재의 대선후보들은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 국가채무 증가 한도를 공약하고, 이 공약을 부득이한 사유 없이 지키지 못할 경우, 탄핵으로 책임질 것을 공약하는 안전장치가 요구된다.

각 후보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아직 어리거나 태어나지도 않은 다음 세대들에게 국가채무의 짐을 지우지 말고,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공약들을 정리하고 진정 국민이 해결을 원하는 불편한 진실들에 대한 대안으로 경쟁하는 대선이 돼야 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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