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타인에게 귀기울이는 노년의 삶, 노화를 늦춘다

이정아 기자 2022. 1. 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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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뇌 기능이 나이가 들면서 감퇴하는 것과 달리 어휘력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듯 언어능력을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언어능력이 감퇴했다고들 느낀다. 하려던 말을 잊거나 사물과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주제를 벗어난다. 노화로 언어능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과학자들이 수십년 간 진행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노화는 언어능력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인지나 감각 등 뇌의 다른 기능이 떨어지면서 그 결과로 언어능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운동이 체력을 단련하듯 나이를 먹을수록 언어능력을 꾸준히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리있는 말솜씨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노화를 늦추는데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로저 크루즈 미국 멤피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체인징 마인드(Changing Minds)’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해 언어와 노화 간의 관계를 밝힌 과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했다. 최근 최원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한 '노화와 언어는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를 국내에 냈다. 

"노화가 언어능력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없어"

학계에서는 일생 동안 신문과 책을 꾸준히 읽은 결과 어휘력이 지속적으로 발달한 결과라고 추정한다. 이는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명 등을 기반으로 독서량을 평가하는 ‘저자인식검사’ 결과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원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팀이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67~80세의 저자인식검사 점수는 42.1로 12.8점이 나온 19~25세보다 훨씬 높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3월 ‘심리학 및 노화’에 실렸다. 

 누구나 경험하듯 노화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은 극명하다. 크루즈 교수는 ”노인이 젊은이보다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언어능력 자체보다는 시청력이나 정보처리, 작업기억, 억제통제 등 뇌의 다른 기능이 감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청력만 나빠져도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말 뜻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언어능력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작업 기억과 집행통제능력“이라고 말했다. 집행통제능력이란 하나의 과제를 끝낼 때까지의 집중력과 한 과제를 끝내고 다른 과제로 쉽게 전환하는 능력, 주변의 방해요소를 억제하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가령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보다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 한 번 뱉은 말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도 이런 능력들이 감퇴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를 보면 노화가 직접적으로 언어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과가 많다. 일부 연구에선 미국과 유럽은 60대 후반 노인이 20대보다 어휘력이 오히려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티모시 솔트하우스 미국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2019년 2월 인지노화관련 학술지 '심리학 및 노화'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의 기능 중 기억이나 지각 속도, 추론은 20대부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줄다가 60대 이후 급감한다. 반면 어휘력은 20대 이후 점점 증가하다가 70대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 어휘력이 다른 뇌 기능에 비해 노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학계에서는 일생 동안 신문과 책을 꾸준히 읽은 결과 어휘력이 지속적으로 발달한 결과라고 추정한다. 이는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명 등을 기반으로 독서량을 평가하는 ‘저자인식검사’ 결과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 교수팀이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67~80세의 저자인식검사 점수는 42.1로 12.8점이 나온 19~25세보다 훨씬 높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3월 ‘심리학 및 노화’에 실렸다. 

크루즈 교수는 "노인들은 어휘의 배경이 되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 많다 보니 일부는 말을 유창하지만 오히려 일부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언어능력을 잘 단련시키면 노화를 늦춰 인지 기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체 단련하듯 ‘글쓰기’로 언어능력 단련해야

하지만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2012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지각 등 인지능력이 나이가 들면서 급감하지만 어휘력과 언어능력은 약간 감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발전한다는 서구 사회의 사례와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신조어나 유행어가 많이 생겨나고 언어 문화가 급격하게 바뀌는 탓도 있겠지만 언어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서구 사회보다 부족한 것도 한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최 교수는 ”한국인은 학교를 졸업한 뒤 독서량과 독서 시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에는 영상매체에 대한 의존성이 늘면서 더욱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독서뿐 아니라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거나 글을 쓰고, 대화를 하는 것도 언어능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크루즈 교수는 ”체력단련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듯 지속적으로 말하고 듣고 읽고 쓰면서 언어능력을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며 ”이런 노력을 통해 나이가 들어 인지기능이 감퇴하는 속도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읽기와 쓰기, 말하기, 듣기 중 생활에서 언어능력을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며 ”메신저 대화처럼 아주 짧은 글이라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회고하면서 글을 쓰는 일은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쓰기가 노년 인지기능 유지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미국 유타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평균 73.5세 성인 215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일기처럼 긴 글을 꾸준히 써온 사람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비롯한 모든 유형의 치매 발생 위험이 53% 낮았다. 특히 6글자 이상의 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효과를 높였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10월 국제학술지 '노년학저널'에 발표됐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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