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혈통'으로 정의하는 한 중화민족의 미래는 슬프다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재중문화교류활동가 입력 2022. 1. 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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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보인(波音)
<무자사기(無字史記)-유전자에 감춰진 선조들의 비사>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한·중·일이 참여한 다국적 연구팀의 알타이어계통 기원 연구가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터키, 몽골, 퉁구스, 한국어와 일본어 등의 기원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북아시아의 유목민족이 아니라 9000년 전 요하 서역에서 기장을 재배하기 시작한 농민들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유전생물학, 고고학, 언어학 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 최근 선사시대의 인류와 민족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학제 간 연구를 주도하는 이들 독일 연구진과 협업한 중국과학원 팀이 재작년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도 이번 연구와 상보적인 관계를 이룬다. 중국 정부는 이 성과를 2020년 10대 과학연구 업적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역사과학 칼럼니스트 보인이 2021년 출간한 <무자사기>는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이 연구 결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직립원인 등의 고인류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아시아 대륙으로 진입하고 퍼져나간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몽골족 출신인 덕에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족혈통중심주의의 혐의를 벗어날 수 있다. 모두에 소개하는 것은 “태즈메이니아의 비극”이다. 빙하기에 도보로 호주 대륙에서 이주한 후 1만년간 외부와 접촉이 차단됐던 이 섬에 백인들이 당도했을 때, 원주민들은 도리어 기술이 퇴보한 원시 상태였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위치한 중국은 서쪽에서 온 채색도기나 청동기술을 받아들였다. 요하와 황하 유역에서 기장과 조, 콩을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남부지역에서 개량된 야생벼가 올라오고, 다시 서쪽에서 밀이 들어와 오곡이 차려졌다. 마침 당시의 기후와 기술 수준에서 농사를 짓기에 가장 적합했던 황하 유역에 다양한 민족이 모여들어 화하족을 이루기 시작했다. 저자가 현대의 크리올에 비유한 원시한어도 만들어졌다. 상(商) 왕조가 갑골문자를 창제하면서 3000년을 이어갈 중화문명이 탄생한다.

오래전 중국 남방에는 화하족과 구별되는 다수의 혈통과 문화가 존재했는데, 일찌감치 대만으로 건너가,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까지 퍼져나간 오스트로네시안도 이들 중 일부이다. 역시 유전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북방민족역사 전문가인 베이징대학의 뤄신(羅新) 교수가 2019년에 출간해 호평을 받은 <반역자로서의 역사가(有所不爲的反叛者)>는 유전자 기술의 광범위한 사용에 의한 역사와 민족 연구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인터넷 애국주의를 비판하며 민족주의를 초월한 역사연구를 주장하는 그는 이러한 기술의 남용이 인종주의로 귀결할 것을 염려한다. 그 선배 격이며 역시 독일에서 유래한 체질인류학이 나치에 의해 우생학으로 사용된 과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탈민족주의 주장은 중국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 내용은 아니다. 선비족의 북위, 흉노나 돌궐의 역사를 살피며, 동투르키스탄 독립을 외치는 위구르족의 민족주의도 근대적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논증하기 때문이다. 그는 북방과 달리 비교적 순탄하게 한족으로 통합된 남방의 역사가 실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정복과 동화의 결과였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민족을 정의하는 요소는 혈통이 아니라 문화이며 그 형성의 주체는 정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니, 중화민족의 완성을 위해 티베트와 신장에서 벌어질 슬픈 미래 혹은 또 다른 결별을 역사가로서 암시하는 셈이다.

재중문화교류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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