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K-할매 할배가 불어넣은 나비효과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2. 1. 1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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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오영수가 골든글로바상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후배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출처=이상윤 인스타그램

지난해 배우 윤여정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외신의 극찬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K-할매'를 조명하는 기사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이는 수정돼야 하다. 지난 10일(한국시간) 배우 오영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한국 배우 최초 기록이다. 윤여정에게 오영수까지 가세하며 'K-노익장'이라 불리는 것이 옳은 상황이 됐다.

따지고 보면 K-콘텐츠의 주역은 젊은 배우들이었다. 그런데 왜 쇼비즈니스의 중심인 미국에서는 노배우들을 먼저 주목했을까?

#따뜻하고 포근한 K-노익장

지난해 3월, 디즈니의 자회사이기도 한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는 단편 애니메이션 '윈드'를 무료로 발표했다. 9분 분량의 이 콘텐츠는 지하 동굴에 갇힌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지상으로 올려보낸 후,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손자가 동굴 아래로 내린 밧줄에 감자 도시락을 묶어 올려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숨에 100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감동 받았다"는 영어 댓글이 쏟아졌다. 

영화 '미나리'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윤여정, 사진제공=판씨네마

이 정서는 '미나리'의 순자(윤여정)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민 온 가족들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미국으로 온 할머니가 희생해가면서 가족을 한 덩이로 묶는 과정은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해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소변을 먹게 한 손자를 오히려 감싸며 "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감싸고, 물가에서 뱀을 보고 두려워하는 손자에게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낫다.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법이야"라고 타이르는 순자의 모습은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그러면서 순자는 유머러스하다. 고스톱을 치면서 해학을 드러내고, 자다고 오줌을 싼 손자를 향해서 "고추가 고장났다"고 장난을 건다. 이런 유머 코드는 또 다른 할머니에게서도 발견된다. 134만 구독자를 거느린 박막례 할머니다. 남다른 패션 감각과 화장법을 선보이고,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박막례 할머니는 지난 2019년 구글 본사의 초청을 받아 순다르 피차이 CEO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순다르 피차이는 "당신의 얘기는 내가 지금껏 본 어떤 사람의 얘기보다 큰 영감을 준다"고 박막례 할머니를 향한 존경을 표했다.

영화 '미나리'로 지난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오징어 게임' 속 오일남은 어떠한가? 물론 그의 반전이 '오징어 게임'의 극 후반을 장악하지만,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오일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456억 원 앞에서 조바심을 내는 인물들 사이에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며 오히려 주변이들을 다독인다. 편의점 앞에서 만난 성기훈과 술잔을 기울이며 생라면을 안주로 내놓는 그는 소박하다. 게임 중 폭동이 일어났을 때는 "나 무서워. 이러다 다 죽어"라고 외치며 광란에 빠진 이들을 일거에 정리한다. 특히 함께 구슬 게임을 하는 성기훈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쇠하며, 급기야 남은 구슬을 성기훈에게 모두 넘기고 최후를 맞는 오일남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며 여러 시사점을 줬다. 

지난해 1월, 미국인 작가 테이 켈러가 미국의 대표적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메달'을 받은 후에도 한국의 할머니가 주목받은 적이 있다. 그의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집필한 '호랑이를 잡을 때'의 뿌리 역시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그에게 들려주던 전래동화였다. 

이처럼 '한국의 노인'이라는 존재가 주는 정서는 외국의 보편성을 뛰어넘는다. 여기에는 내리사랑을 실천하며 자녀 세대와 손자 세대를 위해 한없이 희생하는 한국의 전통성 가족상이 녹아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느껴지지만, 최근 들어 이를 접하는 서양인들에게는 새롭고 뭉클한 감정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열연을 펼친 오영수, 사진제공=넷플릭스

#수상 그 후

윤여정, 오영수가 더 각광을 받는 이유는 이 엄청난 성과 직후 그들이 보인 행보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시상자로 나선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의 호명 후 단상에 오른 윤여정은 "영화 촬영 때 어디 있었냐?"고 농담을 건넨 후 "경쟁은 의미가 없다. 내가 운이 좋아서 이 상을 받았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다. 또 다른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어맨다 사이프리드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감동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장면을 아카데미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로 꼽았고, CNN은 "윤여정이 쇼를 훔쳤다"고 평했다.

오영수는 어땠을까? 코로나19 확산과 더불어 할리우드 내부의 보이콧 바람이 불며 올해 골든글로브는 온라인 시상만 진행했다. 수상 순간, 오영수는 한국에 있었다. 당연히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든 언론 매체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입니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공통 소감을 전한 후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의 일상은 수상 다음 날 일정이 잡혀 있던 연극 '라스트 세션' 준비였다. 그는 들뜨지 않고 묵묵히 연극 준비에 매진했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쳤다. 연극 준비를 위해 언론 인터뷰도 정중히 고사했고, 대다수 매체들은 그런 오영수의 결심을 존중했다. 

이런 행보는, 한국의 노배우들이 세계 속에서 주목 받게 된 근간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연기에 투신한 그들의 연기력은 이미 기본적으로 검증이 끝났다. 여기에 연기를 대하는, 그리고 함께 연기하고 또 작품을 준비하는 동료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저마다 경쟁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까지 더해진다. 결국 윤여정과 오영수, 두 노배우의 수상은 국경과 인종, 언어와 성별을 뛰어넘는 그들의 포용력이 일군 값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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